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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글 Nov 24. 2021

여행을 가서도 글쓰는 가족

가족이 함께 글쓰면 좋은 점

 주문진 영진해변 앞 에어비앤비 숙소. 해변이 바라 보이는 작은 방 안에서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노트북을 켠다. 우리의 가글은 여행을 왔다고 쉬지 않았다. 여행을 왔으니 그날의 주제는 당연히 여행기를 적는 것이다. 놀러 왔으니 당연히 자기 전까지 놀아야 마땅하지만, 그때는 우리의 가글이 한창 분위기를 타고 올라가던 때여서 짐을 꾸릴 때 노트북부터 챙길 정도였다. 특히, 나의 경우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던 때여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던 시기다. 여행을 가기 전 날 운이 좋게도 다음 포털 메인에 내 글이 하나 올라오기도 해서 더욱더 블로그에 대한 열기가 타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즐거운 여행을 와서도 글쓰는 가족, 뭔가 멋지지 않은가?




 글쓰기를 가족이 함께 하면 좋은 것은 말로 하는 것과는 다르게 글로 전달되는 소통이 있는 것이다. 말이나 글이나 모두 듣거나 읽는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말은 억양이 있어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 전달되지만 글은 억양이 없어서 온전히 그 해석의 권한은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문체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도 억양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로 그 부분이 말로 하는 소통과 다르게 글로 통하는 지점이다. 글로 상대의 생각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글은 한 번에 쭉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수정이 가능하다. 말은 일단 입 밖으로 뱉어내면 수습이 안될 뿐 아니라, 논리가 부족하면 주저리주저리 부연 설명도 할 수 있다. 글은 그렇지 못하다. 주저리주저리 쓴 글은 읽는 것부터 힘들다. 그렇게 쓰는 것 자체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문단의 구조는 엉성할 순 있지만, 문장 안에서는 일단 말이 잘 되어야 한다. 즉, 생각을 정리해야 문장이 만들어지고 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글을 쓴 것이어서 글로 표현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로 듣는 것보다 정제된 느낌이 든다.


 가족이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어보는 것은 가족끼리의 새로운 소통 채널이 되기도 했다. 이런저런 것들로 서로 티격태격 다투었어도 다시 한번 글로 표현을 하면 내 생각이 정리가 될 뿐 아니라, 상대의 절제된 생각을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말로만 소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생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글은 휘발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여다보면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읽을 때의 내 감정, 내 상태에 따라서 같은 글도 다르게 해석하듯 말이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했으니, 셋의 이동 경로도 똑같고 먹은 것도 똑같고 본 것도 똑같은 상태이다. 그런데, 그날 적은 우리 가족의 글을 다시 보면 굉장히 다르다. 평범한 글쓰기 실력을 가진 세 명의 글이니 대부분 시간에 따른 사건의 나열 수준에 그치기는 했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 과정에서 마트에서 벌어졌던 일을 가장 자세히 썼고 (주로 아빠가 실수한 부분을!), 엄마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를 걷다 갑작스러운 큰 파도의 습격에 나와 아이의 신발과 바지 밑단이 흠뻑 젖어 버린 사건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나는 점심으로 먹었던 버거와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며 통과했던 우리나라 최장 길이의 터널인 인제터널을 지나며 운전할 때 들었던 생각을 가장 열심히 썼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었지만,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을 보면 참 재미있다.


 이런 우리 가족이 대단한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별나기는 한 편이지만, 대단한 건 아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활을 해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 아주 짧더라도 글로 써 보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은 스마트폰 메모 앱도 워낙 잘 나와서 간단한 글은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시작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이런 글을 적는 나도 불과 1년 전에는 엄마와 아이가 글쓰기를 할 때 도망 다녔던 사람이다. 뭐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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