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흙이 먼저 알아챈다
3월 중순을 넘기면 바람의 질감이 달라진다. 아직 코끝은 차갑지만, 햇살 아래 서 있으면 등이 따뜻하다. 겨울 내내 닫아두었던 창문을 조금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시기가 왔다. 아파트 단지 안 작은 화단에는 이미 누군가 흙을 뒤집어 놓았고, 근처 주말농장에는 밭을 고르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봄이란 결국 흙이 먼저 부르는 계절이다.
처음 텃밭을 시작하던 해, 씨앗 한 봉지가 그렇게 가벼울 줄 몰랐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작은 알갱이들. 그런데 그걸 흙에 묻고 나면 매일 아침 확인하러 가게 된다. 싹이 났는지, 물은 충분한지. 씨앗 한 봉지의 무게는 그램으로 잴 수 없는 것이었다.
3월은 봄 씨앗 파종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한다. 상추, 시금치, 쑥갓 같은 잎채소는 기온이 조금만 올라도 금방 싹을 틔운다. 나도 작년에 상추 모종 몇 포기로 시작했다가, 여름이 되기 전에 샐러드를 직접 만들어 먹는 데까지 갔다.
요즘 사람들은 흙을 만질 기회가 거의 없다. 콘크리트 위를 걷고,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타일 바닥 위에서 잠든다. 그래서인지 텃밭에서 흙을 만지는 시간이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손톱 사이로 파고드는 흙이 불쾌하지 않다는 것 - 이건 직접 해봐야 안다.
봄 텃밭에서 3월부터 심을 수 있는 작물들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감자, 완두콩, 양파 같은 것들은 추위에도 제법 강해서 이른 봄부터 시작할 수 있다. 특히 감자는 심는 시기와 방법만 잘 맞추면 초보자도 실패 확률이 낮은 작물이다.
겨울에는 풍경이 정지해 있는 것 같다. 회색빛 나뭇가지, 마른 잔디, 흐린 하늘. 그런데 3월이 지나면 하루가 다르게 색이 변한다. 어제까지 없던 연둣빛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고, 잔디밭 한쪽에서는 냉이가 올라온다.
이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걸 매년 느끼면서도 매년 놀란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지난주까지 앙상했던 벚나무에 오늘 아침 연분홍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봄은 천천히 오는 것 같지만, 실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도착한다.
텃밭을 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기다림의 감각이다. 씨를 뿌리고 나서 당장 다음 날 싹이 나오지 않는다. 일주일, 열흘, 때로는 보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물을 주고, 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다시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다. 내일은 좀 달라져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하루를 버티게 한다. 화면 속 알림에 반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설렘이다.
올해도 창밖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베란다 화분에라도 상추 씨앗 몇 알을 뿌려볼 생각이다. 거창한 텃밭이 아니어도 괜찮다. 흙 한 줌, 씨앗 몇 알이면 봄은 충분히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