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회사 근처 동사무소에 들어간다. 동사무소 안은 바쁘게 근무하는 한 명과 무료한 일상을 달래고 있는 한 명이 퇴근시간을 체크한다. 주민등록등본 신청서를 작성하는 중 관계 란에 자녀라고 적었다가 딸이라고 적었다가 펜으로 작대기를 그었더니 종이가 헤졌다. 새로운 종이에 다시 기재한 후, 동사무소 직원에게 제출한다. 직원이 신청서를 살펴보더니 나의 신분증을 달라고 한다.
-따님 맞으시죠?
-예,
-혹시 위임장이나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건 안 가져오셨나요?
-예,
며칠 전에 발급받은 가족관계 증명서가 떠오른다.
-잠시 만요.
가방 구석에 뒹굴다가 박힌 탓에 꾸깃꾸깃한 가족관계 증명서를 내민다. 직원은 가족관계를 보고는 나에게 등본을 떼어준다. 파랑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등본상 주소는 재건축 아파트 근처의 빌라촌이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정도의 거리에 아버지가 숨죽이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의 지도를 탐색한다.
빌라촌 골목길을 헤맨 후, 도착한 곳은 다세대 주거 공간이다. 커다란 은색 가스통이 줄지어져 있고 이음새로 연결된 줄은 꼬여 있다. 시멘트로 발라진 외벽은 쪼개진 채 갈라져 있고 현관문의 유리가 깨진 사이로 바람이 오고가는 소리가 심란하게 들린다. 지하로 내려가서 B101호 초인종을 몇 번이고 눌러도 답이 없다.
-홍일수씨 계세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지라는 작자의 이름을 불러본다. 여전히 대답 없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숨을 고르고 큰소리로 부른다.
-홍일수씨~
B102호에서 문이 열리고 머리가 부스스한 아저씨가 머리를 내민다.
-조용히 해! 시끄럽게 굴고 말이야. 요즘 어린 것들은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어. 공중도덕도 몰라?
-죄송합니다. 1호에 홍일수씨 없나요?
-이름은 잘 모르겠고, 거기 사람 없어, 빈 집이 된지 꽤 됐어.
아저씨는 문을 닫다가 문틈에 기대어 서서 머리를 두 번 손가락 틈 사이로 빗질하더니 미간을 찌푸리신다.
-혹시 어디로 가신지 모르세요? 꼭 만나봐야 해서요.
아저씨가 불결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를 훑는다.
-아가씨 홍씨랑 무슨관계인데?
-딸이에요.
-딸 맞아? 요 앞에 있는 행복인력사무소 가봐. 나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닫는다. 머리 위에 날파리가 날아다니고 계단 위 모퉁이에 거미줄이 보인다.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그곳, 전등 빛조차 빛을 잃어버려 어둠에 갇혀 있다.
골목길을 걸어 나와 대로변 모퉁이 꼭대기에 TV 송수신 케이블이 보이는 3층짜리 건물을 찾는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허름한 차림새의 아저씨들이 계단으로 내려온다. 나는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뒷짐진 채 그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대한다. 시시콜콜한 농담을 걸쭉하게 늘어놓던 한 무리가 건물 밖으로 나가자 재빠르게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인력사무소로 올라간다. 3층까지 올라간 후, 인력사무소 간판을 찾을 수 없어서 두리번거린다. 계단에서 뛰어올라가는 발자국 소리가 나자, 나는 계단을 타고 한층 더 올라간다. 옥상 문을 열자 옥탑방이 보이고 글씨를 휘갈겨 쓴 허름한 간판이 보인다.
'행복인력소'
녹이 쓴 문고리에 손대기도 거북한 누런 때를 보고 명품가방 안에서 휴지를 꺼내 문고리를 잡는다.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에는 아저씨들이 떼를 지어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일제히 나에게 고개를 돌리자, 나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고급 펜션 하나를 빌려서 와인 한잔을 곁들인 스테이크 고기 썰던 내가 이런 곳에서 저런 아저씨들과 대면하게 될 줄이야, 단정치 못한 아저씨들의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상상되면서 명품가방의 뭍은 흠결을 손끝으로 살며시 털어낸다. 뒤에서 낯선 아저씨들이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를 노려본다. 나는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건물 너머에 있는 대로변을 내려다보는 척을 한다. 그들이 문안으로 들어가자 문 앞에서 다시 전전긍긍한다. 심호흡을 깊게 내쉬고 눈을 감은 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곰팡이 냄새가 쾌쾌하게 내 콧속 점막을 찌른다.
-무슨 일로 오셨냐?
소리 나는 방향대로 고개를 돌리자 험상궂게 생긴 30대 중반쯤 보이는 남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불쾌한 시선에 움츠려 든다.
-단란한 주점 취업하려면 다른 데를 알아봐!
-그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퉁명스러운 남자가 갑자기 두 손 모아서 공손해진다.
-가정부 쓰시게요? 사모님이신 줄 몰랐네요. 전화로 하시지 직접 오셨어요? 너무 동안이세요~
나는 그의 태도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것도 아닌데요. 혹시, 홍일수 씨 아세요?
그는 계산기를 바로 돌린 후 다시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 홍일수? 누군데?
-키가 작고 몸이 좀 왜소하신 분인데요.
-사채업자야? 돈 뜯겼어? 몰라 그런 사람 없어? 가봐
험악한 남자는 인상을 구긴 채, 모니터를 보며 컴퓨터 타자를 독수리타법으로 친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 어떻게 아는데?
나를 보지 않는 남자의 입 주변 근육이 씰룩 거리자, 눈 옆에 난 흉터가 줄어들었다가 커진다.
-아버지세요.
-아~ 그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나 보지?
남의 사정 따위 배려할 리가 없는 그의 빈정거림이 울분을 쏟는다.
-급한 일이 있어서 찾는 거예요. 도와주실 거예요? 말 거예요?
험악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3을 만들자, 이런 놈들에게 뭘 기대하나 싶은 마음에 가방 속에서 지갑을 꺼낸다. 만 원짜리 지폐 세 장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거기 의자에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나무 의자 결이 고르지 않다. 나는 가방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의자 위에 핀 뒤 조심스럽게 앉자, 한쪽 다리가 닳아서 의자가 삐그덕거린다. 그는 천천히 타자를 친 뒤 엔터를 세게 내리친다.
-어......, 그니깐 안 나오신 지 꽤 됐네.
-언제부터요?
-음......, 언제부터더라, 한 십 년 전에? 기록도 없어, 몰라 귀찮아 하여간 없으니깐 가~
-그럼 만약 찾으시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제가 사례할게요.
나는 테이블 위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휘갈겨 쓰고 그에게 건넨다. 그는 내 손에 걸린 미끼를 낚아채듯 가져간다.
-알았으니깐 가봐.
단정하게 내가 앉은 곳을 정리하고 황급히 밖으로 나간 뒤, 숨을 몰아 쉰다. 이들과 섞어 노는 아버지가 거북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를 정말 찾아야 하나 싶다. 차라리 대역을 맡기면 멋있고 기품 있는 중년 남자가 나의 품격을 높여 줄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노곤함에 회의가 느껴진다.
집 대문 앞, 썰렁한 공기가 빠르게 지나 내 볼을 스친다. 그에게 문자 메시지가 온다.
-아버님이 낚시를 좋아하신다고 했지?
-네.
그가 낚싯대 사진을 보내왔다.
-오늘 하나 구입했어, 아버님이랑 낚시가고 싶다.
-네. 좋네요.
거짓말이라는 미끼가 거짓말을 낚고 있다. 타인을 기망한 적 없이 살아온 내가 내 입으로 방정 떤 가상의 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찾은 후, 아버지를 입맛에 맞게 포장해야 한다. 어설프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가족인양 살갑게 딸 인척 군다는 것,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솔직하게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말하면 안 되는 건가? 10년 동안 소식도 모르는 아버지, 결혼만 아니면 궁금하거나 필요하지 않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 10년 전에 고장 난 대문은 아직도 소란스럽게 귓가를 찌른다. 고칠 줄을 모르고 고쳐야 할 생각이 들지 않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익숙하다. 방에 들어온 나는 준호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네. 오빠.
-집에 잘 들어갔어?
-네. 저희 아버지가요.
숨을 들이마신다.
-응? 아버님이 왜?
-저희 아버지가......,
-혹시 우리 반대하시는 거야?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 반대하시는 거지?
-절대 아니에요.
-그럼 뭔데? 아버님이 왜?
-3개월 뒤에 보자고 하셨어요.
-저번에 말했잖아.
-아, 제가 깜박했나 싶어서요.
-우리 여보도 걱정되는구나. 나도 요즘 실감이 나지 않아. 결혼이라니.
-그러네, 엄마가 불러서 나 이만 끊을게,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그의 목소리에다 대고 진실을 논할 수 없다. 그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말한다면 그는 분명 괜찮다고 하겠지, 그는 좋은 사람이니깐 괜찮다고 할거야라고 수도 없이 외쳤음에도 뛰는 가슴은 진정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