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내가 아버지 부재에 대해 말한다면 정말 안 되는 걸까?
-너 무슨 일 있냐?
-아버지가 예전에 일하는 용역업체에 갔는데, 아버지와 내가 사는 세계가 너무 많이 다른 거 같아서, 찾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 같아. 그리고 아버지가 건축가는 아니잖아. 일용직 근로자신데, 내가 잘 못 생각했네.
-왜 너희 아버지 노가다라고 말하게?
-그럼 이상한가?
-너 한국에서 30년 살아봤잖아. 가진 거 없으면 깔고 뭉개는 곳인 걸 잊었어? 만약 너희 아버지가 건축가가 아닌 노가다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넌 그 집에 몸종이야, 너희 남편이 사랑하네~ 너 없으면 안 되겠네~ 하고 결혼하면 끝인 거 같지? 모임 때마다 노가다 장인 때문에 시부모님 얼굴에 먹칠하고 넌 시부모님의 괄시에 시달려야 한다고, 여기 한국이야,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해야 하는 곳이라고, 그렇게 무시당하고 살아와 놓고 아직도 모르겠어?
대학교시절 학교 앞 아르바이트에 늘 지영이가 옆에 있었다. 악착같이 깡마르고 인성이 베베꼬인 아이, 독기가 서린 어린 지영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 도중 지영이 손이 미끄러져서 손님에게 뜨거운 음식을 흘렀다. 고급지게 살아온 손님은 지영이의 뺨을 후려 쳤고 떨어진 음식을 쳐 먹으라고 소리 쳤다. 지영은 태연하게 무릎 꿇고 두 손으로 파스타를 집어먹었다. 손님은 지영이의 독기에 무서워하며 뛰쳐나갔고 지영은 그날로 레스토랑을 그만 두었다. 지영이 마지막 떠나는 날 나에게 했던 말은 ‘어디 가서 또 아르바이트를 찾아야하냐면서 여기가 그래도 시급은 높았는데’ 하면서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악덕 고용주에 시달리고 월급은 못 받기 일쑤에 때때로는 알바생이라고 부러 먹힘 당할 때마다 서로를 자매처럼 위로하던 사이다. 억척같이 대기업 입사하고 한 달에 오백 가까운 월급을 받으면서 잊어버린 것이다. 여기가 어떤 사회였는지.
-너 말이 맞아. 여긴 한국이었지.
-준호 같은 레벨의 남자 만나려고 한 달에 몇 백씩 결혼정보회사에 돈 쏟아 붇는 여자들이 몇 명 인줄 알아? 더군다나 결혼 정보 회사에서 여자가 A 등급 받으려면 아버지가 장차관이나 대기업 사장 이상 정도 되어야 해. 너도 알잖아.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춰줘야지. 안 그래?
-너 말이 맞아, 건축가는 근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버지 건축은 하나도 모르는데.
-요즘 안되는 게 어디 있어. 페이퍼 회사 만들고 명함 파고 고급 외제차에 기사만 달려주면 다 사장님이고 건축가인걸, 내가 이 분야에서 잘 아는 사람이 있어. 내가 의뢰 해둘게, 넌 지금 가짜든 진짜든 아버지만 만들어와.
-아무래도 아버지 찾는 건 어려울 것 같아. 계획 2번으로 수정해야 할 거 같아.
-괜찮겠어? 어머니 만만치 않으실 텐데.
-부딪혀 봐야지
-그러지 말고 아버지 딴 여자 생겼다고 얘기해봐. 그게 직빵이야.
-그 방법밖에 없을까?
-우리 어머니 그 얘기 듣고 피부 시술 받고 헬스클럽 등록하셨잖아. 더 좋은 남자 만나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알았어, 고마워.
-잘하고 와.
전화를 종료한 뒤, 나는 숨을 고르고 거실로 나가 어머니 방문에 귀를 기울인다. 희미한 전화 소리가 방문을 넘어 들려온다.
-거기 홍일수씨 핸드폰 아니죠? 예......,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습니다.
어머니의 통화가 종료되고, 내가 방문을 열자 어머니는 깜짝 놀란 토끼눈으로 등 뒤로 수첩을 황급히 숨긴다. 여전히 아버지의 행방을 찾고 있는 듯하다.
-엄마? 뭐해?
-아니야 아무것도
-엄마 아버지 찾아?
-어? 아냐. 내가 왜 네 아빠를 찾니?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어머니 손을 잡고 진지하게 묻는다.
-이젠 아버지를 잊을 때도 되지 않았어?
-이미 다 잊었어.
-그럼 그 수첩은 뭐야?
-그냥 간단하게 메모할게 있어서, 엄마가 요즘 깜박깜박하잖니.
-엄마, 이젠 아버지 잊자. 아버지는 우릴 버렸어. 엄마랑 이혼하고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고 도망간 거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연락 못한 사정이 있었겠지.
-엄마 홀서빙 하고 식당에 쪼그려 앉아서 차가운 물로 불판 하루 종일 닦느라 힘들어서 매일 울었던 거 기억 안나? 그때 아버지는 어디 있었는데. 없었잖아. 엄마를 이미 버린 거라고.
-아니야. 너희 아빠 분명히 돌아와, 작별 인사도 못했어.
-왜 10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데. 사채업자에게 시달렸을 때도, 우리 집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였을 때도 아버지는 없었어, 알아? 엄마 혼자 벌벌 떨면서 맞섰던 거 기억 안나??
어머니가 서글프게 울자, 나는 어머니의 눈가를 닦는다.
-아니야. 사채업자한테 이집이랑 가구 안 넘기려고 나랑 이혼 한거지. 분명히 아빠는 돌아와.
나는 어머니를 안는다.
-아버지 재혼하셨어. 이미 자녀도 있는 거 같더라고.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확인했어. 그니깐 이제 아버지를 잊고 엄마 인생 살아. 다른 남자도 만나고
어머니는 내 가슴팍에 묻혀 목 놓아서 운다. 10년간 쌓아놓았던 감정들을 풀듯, 가슴 깊이 묵혀둔 상처들이 터져 나오는지 가슴을 치면서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의 아픔을 못 본 척 옆에서 착한 딸인 척 달래던 내 이기심이 잔혹하게 변하게 한다.
-울지마.
-정말 너희 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산다고? 거기가 어디야?
-모른 척해. 이미 남의 남편인 아버지 따윈
-봐야 믿겠어.
-보지 말라니깐. 엄마만 속상해. 8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도 있는 거 같더라고. 예전에 할머니가 대를 이어야 한다고 아들 찾으신 거 기억나지? 바로 재혼해서 아들부터 낳았더라고. 이젠 엄마도 맘 접어.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송곳처럼 아직까지 남아있는 내 양심을 찌른다. 엄마는 기력이 떨어졌는지 방바닥에 엎드려서 온몸을 바르르 떨며 서슬프게 운다. 과거의 옛사랑을 잊듯,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묻듯, 그렇게 천천히 울음을 삼킨다. 나는 엄마의 손등을 쓰다듬는다.
-이젠 아빠 잊고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되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
-필요 없어, 나 혼자 살 거야.
-내가 만약 결혼하면 엄마 이집에 혼자 살아야 하잖아. 분명 쓸쓸 할 거야.
-그냥, 혼자 살랜다.
-그러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서 사랑받고 살아. 엄마가 얼마나 예쁜 줄 알아? 지금이라도 재혼자리에 나가면 분명 엄마 좋아하는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귀찮게 하지 말고, 엄마 잘게. 나가줘.
내가 몸을 일으키자 엄마는 우울증 약을 찾아서 먹고 물을 마신다. 어머니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방에 들어와서 지영에게 전화한다.
-잘 됐어?
-아니 우리엄마는 안 된다니깐.
-그럼 뭐가 있을까?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는 건 어때?
-죽으면 수절하실 분이야.
-이건 첩첩산중인데, 3번으로 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아버지를 어디 가서 찾나?
-내가 잘 아는 흥신소 있는데 소개시켜줄까? 저번에 그 개자식이 우리 집에 와서 학자금 내려고 모아둔 돈 들고튀었을 때 여기서 찾았잖아. 개자식이 지 아들 먹이려고 어쩔 수 없이 돈 가져왔다고 싹싹 비는데, 확 아버지도 뭐고 없애버리고 싶었어.
-너도 참 인생이 막장드라마네.
-그러게 스팩타클했지, 그러나 이젠 돈 많은 남자 물었으니 행복할 일만 남았어~
-너가 행복해서 다행이다. 나도 다시 아버지를 찾아봐야겠어.
-주소 문자로 보내줄게.
-응. 고마워.
더워진 날씨와 구두 굽은 높은 탓에 다리가 욱신거리고 짜증지수가 쏟는다. 몇 분째 골목길을 돌고 돌아 같은 자리만 맴돌다가 찾아간 2층짜리 건물 지하에 간판도 없는 흥신소가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소리는 음산하여 거리낌이 가득하고, 문지방에 짜장면 빈 그릇이 며칠째 방치되었는지 파리가 들끓는다. 문을 열려고 손을 내밀다 말고 가방 속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어 문고리를 잡고 열어젖힌다. 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자, 머리가 번질번질한 남자가 태연스럽게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다.
-여기 흥신소 맞죠?
남자는 나를 흘기더니 별 대수롭지 않은 듯, 자기 앞에 있는 종이를 건네주면서 음식을 먹는다. 종이 위에는 이름, 주소, 주민번호,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쓰여 있다. 바람이 꺼진 가죽쇼파에 엉거주춤 앉아서 가방 속에서 꺼내든 가족관계증명서로 아버지의 신변을 적는다. 완료된 종이를 다시 건네자 남자가 손으로 3자를 가리킨다. 나는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바라보자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한번 하더니 나를 노려본다.
-선수금 몰라?
-아, 죄송해요.
나는 가방 속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자 남자가 빈정 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서둘러 십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을 탁자위에 올려놓자 일어섰던 남자가 곁눈질로 금액을 세워 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접수 완료, 이만 가봐
-연락 꼭 주세요.
남자는 귀찮다는 듯 쇼파에 드러누우며 돈을 주머니 속에 얼른 넣는다. 난 찜찜하고 더러운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온몸이 근질근질한 게 아무래도 더러운 곳에 기생하는 벌레가 옮긴 듯싶다. 집에 얼른 돌아가서 목욕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할 때,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내가 사랑하는 준호다.
-여보야, 요즘 연락도 없고 왜 이리 바빠?
-오빠, 미안해요. 어머니가 좀 아프셔서요.
-어머니가 어디가 아프신데? 많이 안 좋으셔?
-이젠 괜찮아요.
-그렇구나, 너가 고생이겠다. 엄마 간호해 줄 사람이 너 밖에 없잖아.
-예, 그렇죠.
-그렇구나. 우리 어머니가 너 보고 싶어 해
-어머님이요?
-내가 너희 부모님 뵙고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네가 보고 싶다고 점심식사에 초대하셨어. 혹시 다음 주말에 우리 집에 와 줄 수 있어?
-예, 갈게요.
-다행이다. 네가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
-괜찮아요.
-그럼 오늘 잘 자고 내일 회사에서 보자.
-예
그의 전화가 끊기고 택시 운전기사는 슬그머니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창밖에는 주말 인파로 만원이 되어버린 차들이 뒤엉켜 있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돌돌 말려 끝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