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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까우니까청춘이다 Sep 07. 2023

나의 첫 임신 그리고 첫 유산

8주간의 임신 그리고 계류유산 





계획임신 또는 깜짝임신 



이십대에는 딱히 아이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서른이 넘자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없는 나의 미래를 비관하고는 했었다. 

드디어 내 나이 서른 둘 무렵 나는 드디어 아이를 갖는다는 꿈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8개월쯤 시도했다. 처음에는 금방 될 줄 알았지만 

나는 그 목표에 나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쌓여오는 실패감, 그동안 나는 왜 피임에 집착해 왔던 것일까 

아이를 갖는 건 이리도 쉽지않은 일인 것을

마치 복권 사보듯 도전해보고 실패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일상에 지쳐서 아이를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포기했던 그 달 나는 성과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왠지 모르게 나른했고 몸은 뜨끈뜨근해지며  

겨드랑이 부분이 아프기 시작했고 소화 불량이 잦아졌다. 

생리는 찾아오지 않았고 어떤 예감에 휩쌓인 채로 

임신테스터를 했고 두 줄을 처음 보게 되었다. 


처음 찾아 온 새 생명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행복한 꿈과 걱정사이에서 삼주를 보냈다 


내 3주 간의 임신 기록 


6주차의 나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냈다. 

지피에 가서 확인받고 첫 초음파 예약을 했다. 

그때까지는 믿겨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임신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7주차가 시작되자마자 끔찍한 입덧이 찾아왔다.  

하루종일 나는 어느 배에 갇혀 지내는 느낌을 느꼈다. 

빈 속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뭐라도 우겨넣으면 

그 즉시 소화불량이 되어 고통스러웠다. 


술이 그리운적은 없었다. 보드카 마시고 진탕 취한 날의 숙취가 내 몸에 항상 있었으니까 


그래도 처음 아이를 보는 그 날을 기다리며 힘을 내었다 


일을 갔다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속이 미식거려 늘 레몬네이드를 달고 살았다 

8시도 되기 전에 꿈나라에 가고 12시가 되면 일어나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무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내몫을 다해야 하고 아무도 내 임신사실을 모르니 난 평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7주가 다 지나갔다. 그동안 온갖 걱정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 편에는 기대감을 즐겼다. 

그동안 배의 심한 통증은 없었으니 자궁외 임신은 아니다 안심했던 것 같기도 했다. 

내게 일어날 일들은 꿈에도 모른채 아니 꿈은 알고 있었나? 


꿈에서는 알고 있었나? 


초음파 하기 이틀 전인가? 나는 꿈을 꾸었다 

친구랑 어느 차 위에 앉아 있었고 차창 밖으로 있는 아이에게 

친구가 인사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안녕' 손을 흔들었다.  


꿈에서 깨어 나는 이게 만남의 인사인가 헤어짐의 인사인가 

불길한 느낌을 느꼈다 사실 나는 헤어짐의 안녕을 직감했고 

그 뒤 에둘러 만남의 안녕이라 믿어 보려했다 


하지만 초음파 당일날에는 걱정밖에 없었던 지난 날과 달리 

나는 긍정적이었다 

속이 울렁거려 바나나 한쪽과 귤을 우겨넣으며 

초음파를 하러 가는 길에도 아이를 본다는 생각에 신이났다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봄에 와준 너에게 

봄이라는 태명을 지어줄 것이라며 잔뜩 설레있었다 


그렇게 간 초음파센터에서 나는 심장이 멈춰버린 아기를 보았다 


그 뒷 이야기는 너무 슬퍼 아직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딱지가 진 부분에 여전히 피가 고여있듯 

나의 상처에도 여전히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나고 집에 돌아와도 눈물이 났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눈물이 났고 억울해서 화가났다 


오후에 지피를 만나러 갔다. 

지피는 심장이 뛰었던 아이였는지 심장이 뛸 예정인 아이인지는 아직 모른다며 

조금 기다려보고 다시 보자고 하였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구글을 검색했다 유산에 관한 영어 단어를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유산에 관한한 척척박사가 되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너무 흔한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잔인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봤던 초음파에서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나의 임신은 종결선언이 내려졌다 


나의 희망들은 산산히 부서졌고 

짧은 나의 임신기록 작은 종이 한 장에 담겨졌다. 

그 뒤의 기록은 뒷글에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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