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신 Jul 14. 2021

별 그림자

[엽편소설]

 문이 열려 있는 버스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내 마음과 달리 속도가 붙지 않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른쪽 왼쪽으로 중심이 기울어졌다.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는 게 내 병의 특징이다.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와 있다. 내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저 여자 때문에 언제나 늦는다니까.” 

 투덜대는 김 씨의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간암 환자인 그는 급한 성질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탄식을 하면서도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나 그 성격이 어디 가랴 싶었다. 민자 씨가 차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부축해서 차에 태운 다음 비어 있는 좌석에 앉혔다. 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버스가 출발했다. 

 민자 씨는 나의 별이다. 아니, 우리들의 별이다. 버스에 타고 있는 누구도 내 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쌍꺼풀진 큰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탤런트 이영애를 닮은 목소리는 산소처럼 맑다. 그녀는 우리들의 식사를 보살피고, 성경책을 읽어주고, 안마도 해 준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부축할 때도,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분노와 마주할 때도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그녀가 오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간이 더디 흘렀다.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또 민자 씨의 부축을 받았다. 혼자 힘으로는 계단이나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목욕탕 앞에서 일행은 남탕과 여탕으로 갈라졌다. 민자 씨가 내 옷을 벗겨 주고 목욕탕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비누칠을 하고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사람들이 하나둘 온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비누칠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물에 젖은 비누는 너무 미끄러웠다. 아무리 애를 써도 떨리는 손으로는 비누를 집을 수 없었다. 위암 수술을 했다는 영혜 씨가 비누를 집어서 내 몸에 문지른 다음 샤워기로 물을 뿌려 주었다. 영혜 씨의 배에는 세로로 길게 수술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온탕 가장자리에 앉아서 환자들의 등을 밀어주는 민자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수증기 사이로 울려 퍼졌다. 민자 씨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웃음이 좋은 치료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내가 우리라고 부르는 요양원 입소자들은 말기 암이나 자가 면역 질환 같은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내가 앓고 있는 소뇌 위축증도 불치병이다. 입소자들은 모두 기적을 바라고 천연 치유 요양원에 왔다. 살고 싶고,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민자 씨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은 등만 맡기면 되지만, 나는 전신을 모두 맡겨야 한다. 그녀가 목욕탕 바닥에 수건을 깔더니 내 손을 잡아서 일으켰다. 나는 바닥에 깔아 둔 수건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무방비로 그녀에게 몸을 맡길 때마다 제 몸뚱이 하나 스스로 씻지 못하는 처지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심한 수치심에 더해 열패감마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전문 세신사처럼 때수건을 낀 두 손을 탁탁 마주쳤다. 아프면 말하라는 당부부터 하고 내 몸의 때를 밀기 시작했다. 감기 걸리면 안 된다며 그녀가 내 가슴에 따뜻한 물을 끼얹었다. 물 온도만큼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아까 비누칠해 주던 영혜 씨 배에 있는 수술 자국 보셨죠? 수술하지 않고 이곳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몸에 칼을 대는 건 하나님의 섭리를 어기는 짓이에요.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치료제가 있잖아요. 햇빛과 공기와 물. 기도하세요. 그분이 독수리처럼 강건하게 해 주실 겁니다.”

 민자 씨가 조곤조곤 말했다. 

    

 오늘도 민자 씨는 오지 않았다. 그녀가 오지 않자 요양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웃음소리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녀를 걱정했다. 봉사자와 요양원 직원들에게 그녀가 왜 오지 않는지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어느새 2주일이 흘렀다.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비틀거리며 식당으로 갔다. 웬일로 성질 급한 김 씨가 나를 부축해서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나는 혹시 민자 씨가 오지 않았는지 사방을 둘러보았다. 통유리 창문 밖으로 솔숲이 보였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까치가 푸드덕하고 날아올랐다. 

 그때 식사 시중을 드는 봉사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문 들었어요?”

 “소문이라니?” 

 “민자 씨가 수술했다잖아요.”

 “수술요?”

 김 씨가 큰 소리로 물었다. 

 “자궁을 들어냈대요.”

 자기도 며칠 전에 들었다며 한 봉사자가 맞장구쳤다.

 “정말이에요? 정말 민자 씨가 수술했어요?”

 내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바람에 음식 접시를 식탁에 놓으려던 봉사자와 부딪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접시에 담겨 있던 밥과 반찬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술 같은 건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봉사자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게, 수술하고 왔다고 나한테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괜히 죄지은 거 같아서 민자 씨 볼 때마다 고개를 못 들었는데…….”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영혜 씨가 구시렁거렸다.

 민자 씨를 만나서 물어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식당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내 발이 짚은 건 허공이었다. 세 개밖에 안 되는 계단이 천길만길 낭떠러지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별들이 지나갔다. 

(거짓말 삽니다, 2019, 나무와숲)     

작가의 이전글 최후의 승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