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투 12화

스파게티 위드 토매토우 소스

[감성 에세이]

by 이현신

그가 차를 세운 곳은 와인 레스토랑 주차장이었다.

실내에는 적당히 밝은 조명을 받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붉은 벽돌 사이에 서 있는 원목 장에는 수백 가지는 될듯한 와인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와인 레스토랑은 처음이었다. 종업원이 예약된 좌석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스파게티 위드 토매토우 소스’를 주문했다. 나 역시 메뉴판을 보지 않고 봉골레를 시켰다. 그가 스파게티를 시켰기 때문에 나도 스파게티를 시킨 것이다. 그가 와인 메뉴판에서 하나를 골랐다. 와인 종류가 많은 탓인지 와인 메뉴판이 따로 있었다.

“이 집은 규모로 보아 다양한 음식이 있을 것 같은데 왜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스파게티 위드 토매토우 소스를 주문했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그는 약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게 어때서?”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파스타는 맛이 진해서 와인과 어울리지 않잖아.”

“그래? 나는 언제나 스파게티 위드 토매토우 소스만 먹어.”

그는 토 매 토 우 소 스라고 한 음절씩 끊어서 또박또박 발음했다.

“왜?”

그는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처음 유럽에 출장 갔을 때 밤에 도착했거든.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거리로 나가 이집 저집을 기웃거렸어. 중국집 간판이 보이기에 들어갔더니 메뉴판을 주는데 알 수가 있나. 그래서 이 집에서 제일 잘하는 게 뭐냐고 물었지. 국수가 들어간 생선탕이라기에 시켰는데 모양은 그럴싸했어. 뽀얀 국물에 쌀국수 같은 얇은 면과 생선과 토마토가 들어 있고, 얇게 저민 생강과 파가 고명으로 올려져 있었어. 생소하긴 했으나 맛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조금 떠서 맛을 보았는데 비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 나는 국수 한 가닥 입에 넣지 못하고 돈만 내고는 지하철역으로 가서 상추와 얇게 썬 햄과 치즈와 토마토를 끼운 빵을 샀어. 입을 크게 벌리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빵이 어찌나 질긴지 빵을 꽉 물고 도리질한 다음에야 간신히 먹을 수 있었어. 다음날은 스테이크를 먹어 보기로 했지. 양송이수프로 할 거냐? 야채수프로 할 거냐? 샐러드는 뭐로 할 거냐? 드레싱은 어떤 걸로 할래? 맥주를 마실래? 물을 마실래? 물이라고 하자 또 묻는 거야. 위드 개스? 윗아웃 개스? 하고. 개스 물은 뭐고 윗아웃 개스물은 또 뭔지? 나는 윗아웃 개스라고 대답했어. 개스든 뭐든 아무거도 없는 게 좋겠다 싶었거든. 그런데 또 묻더구만. 고기를 어떻게 구워줄까? 하고. 간신히 주문하고 기다렸어, 야채수프가 덜 느끼할 것 같아서 시켰는데 불그스럼하고 시큼해서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맛이었어, 고기는 썰자마자 붉은 핏물이 흐르는 통에 입맛이 싹 떨어졌어. 먹기를 포기하고 근처 쇼핑몰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로 갔어.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니 재료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건 스파게티 위드 토매토우 소스밖에 없었어.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건 스파게티 위드 토매토우 소스만 먹어. 맛이 비슷하고 주문하기도 쉬우니까.”

“하하하, 그런데 여긴 서울이잖아. 물어보면 되지. 이것저것 시켜보고 경험을 쌓으면 되는데 왜 토마토소스만 고집하는 거지?”

그가 메뉴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이 한글이 아니었다. 국제화되어서 그런 걸까? 왜 우리나라 말로 메뉴판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글이 아닌 언어로 쓰인 메뉴판을 서울의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내민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봉골레, 이 이름은 쉽잖아? 먹어봐. 그리고 다음엔 봉골레를 시켜봐.”

나는 그에게 한 입 먹어 보기를 권했지만, 그는 무엇이든 실패하는 것은 싫다며 거절했다.

그가 주문한 와인은 상큼하고 드라이해서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화이트와인이었다.

“내가 봉골레를 먹어서 화이트와인을 시켰어? 이 와인은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데.”

그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시원하잖아. 입가심하기 좋잖아.”
도대체 이 비싼 레스토랑에 왜 왔는지? 나를 위해서?

그가 와인 맛을 몰라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고집불통인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모범생의 비애 같기도 해서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오늘따라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화이트와인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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