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투 04화

보금자리

[엽편소설]

by 이현신

무리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탕탕탕.

보금자리를 짓지 못한 쌍은 결혼해서는 안 된다. 이게 우리들의 법칙이다. 한 번만 더.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다음 봄이 올 때까지 나는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신이 허용한 삶의 시간은 4년에서 5년. 세상으로 나온 지 2년이 지나야 둥지를 틀 수 있으니 내게 남은 기회는 2번 정도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보다 적을 수도 있다. 좋은 짝을 만나 알을 낳고, 부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엄동설한을 지나는 동안 절반 이상이 죽는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보금자리를 짓지 못한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산들바람에도 나는 아팠고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도 미웠다. 알을 품은 엄마들을 질투했고 아기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같이 화가 났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느라 이를 악물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머저리를 죽이고 싶었다.

구애할 당시의 머저리는 참으로 완벽했다. 둥지 짓는 법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둥지의 모양은 타원형이어야 한다. 나뭇가지로 기초를 세운 다음 흙과 마른 풀을 쌓아야 한다. 나뭇가지의 곡률이 클수록 강도가 강하다. 두께는 두꺼울수록 좋다. 길어질수록 강도는 약해지며…. 그리고 또 둥지는 땅에서 십 미터 이상 높은 곳에 지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곡률이니 강도니 하는 단어를 내뱉으며 둥지 짓는 법을 설명하는 그가 존경스러웠고, 가장 완벽한 짝을 만났다고 생각했으며, 내가 정말 운이 좋다고 느꼈다. 그러나 막상 둥지를 짓기 시작하자 그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둥지 짓기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가 지은 둥지는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날아가 버렸다. 나뭇가지들을 단단하게 고정할 줄도 몰랐고 길고 튼튼한 가지를 물어오지도 못했다. 가지를 입에 물고 뒤뚱거리다 결국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갖가지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알맞은 나뭇가지를 구해 오지 못한다고 타박하고, 잘 쌓지 못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점점 짧아지는 해는 둥지를 지을 때가 돌아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강풍과 추위를 견디는 튼튼한 둥지를 지을 짝을 찾아야 한다. 실패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떨쳐버리고 눈을 감고 생각을 모은다. 무엇부터 살펴야 하지? 나무꼭대기 위로 제일 먼저 날아오르는가? 길고 무거운 가지를 입에 물고 날 수 있는가? 나무껍질을 얼마나 잘 벗기는가?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가는 수컷에게 눈길이 갔다. 그런데 어딘지 낯익은 모습이다. 설마 그 머저리? 머저리는 키가 더 커졌고 몸집도 우람해졌다. 날카로운 눈빛과 날쌘 몸놀림은 도저히 예전의 그 머저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머저리와 나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봄기운을 받고 태어날 아기들을 위해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고, 비가 들이치지도 않으며, 굶주린 들고양이와 뱀과 또 다른 적들을 막을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우리는 집터를 고르는 중이다. 보통 나무 높이의 3분의 2지점에 둥지를 짓는데 키는 10m가 넘어야 한다. 처음에 그는 산등성이에 있는 전신주 위에 올라가서 여기가 어떨까? 하고 물었다. 나는 둥지를 숨길 수 없어 싫다고 했다. 다음엔 소나무 위로 날아가 여기는 어떠냐고 물었다. 똑바로 솟지 않고 구불구불한 소나무는 고양이나 뱀이 올라오기 쉬울 것처럼 보였고, 나는 아기들이 물려갈 것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그가 미루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참새들이 후르르 날아올랐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점점 잎이 무성해질 테니 아늑하고 안전한 보금자리가 될 것 같았다.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그는 미루나무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곳에 터를 잡았다. 집을 지으려면 가늘고 긴 나뭇가지가 많이 필요하다. 내 몸길이만큼 긴 나뭇가지를 적어도 칠백 개는 모아야 하고 다른 여러 모양의 가지도 백 개 이상 있어야 한다. 눈속임용 집을 짓는데도 상당한 양의 나뭇가지가 들어간다. 먼저 긴 가지들을 모아서 바닥에 깔고 끝이 두 개로 갈라진 가지를 이용해 서로 연결한 다음 두껍고 끝이 여러 개로 갈라진 짧은 가지로 단단하게 고정했다. 매일 조금씩 바닥과 벽을 세운 우리는 드디어 지붕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붕과 벽의 경계에는 내 몸길이보다 훨씬 긴 나뭇가지들이 필요하다. 그는 문제없이 긴 가지들을 물고 왔다. 조그마하게 대문까지 만들고 나니 집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서둘러야 한다. 하루도 쉰 적이 없지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방을 만들 차례다. 우리는 진흙을 방바닥과 벽에 발랐다. 그는 부리로 나무껍질을 벗겨 와서 붙이고 진흙 사이사이에 마른 풀도 채워 넣었다.

“이제 예쁜 것들을 많이 찾아오세요.”

내가 말했다.

“예쁜 거? 어떤 거?”

그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나는 예쁜 방과 푹신한 침대를 만들 재료를 찾기 위해 낮게 날며 땅 위를 살폈다. 뭔가가 햇빛에 반짝였다. 하얀색 비닐이다. 빨간색 천 조각과 꽃무늬가 있는 휴지도 찾아서 둥지로 가지고 갔다. 깃털과 동물의 털도 모았다. 그는 내가 가져다주는 재료들을 방바닥과 벽에 고루고루 붙였다. 마침내 포근하고 아늑한 방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보금자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머저리가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아기들이 싱그러운 나뭇잎과 색색의 꽃들 사이에서 산들바람을 타고 나는 법을 배우는 꿈을 꾸면서….

나는 회색 점이 있는 5개의 알을 낳았다. 갑자기 닥친 꽃샘추위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들과 올챙이들이 모두 얼어 죽었으나 우리 집은 따뜻했다. 해가 길어지는 만큼 날씨는 포근해졌으나 비가 오지 않았다. 메마른 땅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지난겨울 두어 번 눈이 왔을 뿐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올챙이들이 죽은 탓에 개구리도 없고, 지렁이들은 땅속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다. 개울이나 웅덩이도 메말라 작은 물고기도 살지 않았다. 감자도 고구마도 보리도 콩도 아직 여물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는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밥이나 고기 같은 음식물을 구하기 쉬웠는데 요즘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음식물들은 모두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 있고, 우리를 위해 창틀에 빵 부스러기나 곡식을 놓아두는 사람도 없다. 막내가 힘없이 쓰러진다. 이름을 부르며 쓰다듬어도 눈을 뜨지 않았다. 아기들이 하나하나 쓰러졌고 이제 둘만 남았다.

그는 아주 멀리 떨어진 강까지 날아가서 작은 곤충들을 잡아 왔다. 나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내 기억 속에 분명히 산이 있었다. 그런데 산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공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엔 뒷산이 사라졌고 다음엔 동쪽에 있던 산이 사라졌다. 남아 있는 산이라고는 우리가 둥지를 지은 작은 산뿐이었다. 조만간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는 산도 사라질지 모른다.

아기들을 모두 잃고 슬피 우는 엄마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깍깍깍, 깍깍깍.

무슨 까치가 저렇게 울어? 시끄러워 죽겠네. 사람들이 불평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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