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에 소나기가 내렸다. 하늘이 황갈색으로 변하며 회오리바람이 불자 거리의 낙엽들이 소용돌이치며 솟아올랐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세찬 빗줄기가 되었다. 때아닌 소나기에 놀란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지하철역을 향해 달려갔다. 물기를 털며 올라탄 전동차 안의 불빛이 유난히 창백하다고 느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정신없이 영안실 복도를 달려가다가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어디 있지? 꼭 봐야겠어.”
“어디 있는지 몰라요.”
“가족들은?”
“경찰서에. 자연사나 병사가 아니라서 그래야 한대요.”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내 커리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를 사랑해서, 사장님을 위해서 회사에 올인했어요.”
그녀의 절규가 내 가슴을 때렸다.
우산을 접고 그녀를 기다린다.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으니 횡단보도를 건너오겠지. 신호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니 어깨에 큰 스카프를 두르고 머리를 단정하게 말아 올린 그녀가 웃고 있다. 일 년 만에 만난 우리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찻집으로 간다. 그가 떠난 지 4년이나 지났건만 그녀는 그가 세운 회사를 꾸려가며 그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헛살다 간 건 아니야. 네가 여전히 사랑하잖아.”
내 말에 그녀가 “여전히….”라고 되뇐다. 생활비 보내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참기로 한다.
우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명랑했는지, 얼마나 글을 잘 썼는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한다. 아! 그녀도 나도 그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전 학년 성적표에 오직 하나 있는‘양’이 음악이라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그런데 메기가 뭔지? 물고기인지? 물고기가 어떻게 앉는다는 건지? 너무 궁금했는데 물어볼 수도 없고, 친구들은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고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메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큰 소리로 함께 웃는다.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유부남이었던 그는 그녀의 사랑을 모른 체 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누구도 지운 적 없는 의무를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사장님이 정말 사랑한 사람은 선생님이었어요. 직원들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모님이 아니라 선생님을 질투했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를 사랑했다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펄쩍 뛰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가 유부남이어서 모른 체 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4년이 지난 뒤에 나는 비로소 그에게 자유를 준다. 마음껏 사랑받고 사랑할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