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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Jul 14. 2024

선택과 집중

[엽편소설]

- 너는 마누라가 밥해주나?

사무실로 찾아온 선배가 물었다.

- 형수님은 밥 안 해 주세요?

선배는 우울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인생 헛살았다. 헛살았어.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의사, 변호사, 교수라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배였다. 

- 너는 경제권 절대 마누라한테 넘기지 마라. 나는 연금통장조차 마누라가 가지고 있다. 퇴직하고 나니 친구들한테 밥 한 번 사기 어렵다. 매일 마누라 눈치 보며 얼마씩 달라고 한다. 갈 데도 없고….

- 저는 아침에 도다리쑥국을 먹었어요. 집사람이 사시사철 계절의 별미를 차려줘요. 

- 너는 정말 행복한 남자야. 장가 잘 갔어.

- 그런가요?

공기업 임원까지 지낸 선배는 억대 연봉에 일 년 열두 달 골프접대를 받았다. 자기 돈 안 내고 골프 치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술은 물론이고 여자를 살 때도 자기 돈을 낸 적이 없었다. 저렇게 한 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아내를 만났다. 순진하고, 착하고, 조용한 여자라서 지켜 주고 싶었다. 

-선배, 가용자원이 적을 때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아내를 선택한 후 온전히 집중했어요. 덕분에 강남에 사는 중산층이 될 수 있었죠. 공부 잘하는 내게 희망을 걸었던 부모 형제들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어요. 조카들 학비라도 보태주고 해야 하는데…. 생각만 했어요. 인연이 끊어진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 늘 빚진 마음이었죠. 선배의 말을 듣고 보니 나의 선택이 현명했던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요. 내 사무실을 운영하기에 선배처럼 퇴직 후의 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장가 잘 갔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선배의 뒷모습이 허허로웠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니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나는 꽃집에 가서 오직 장미만으로 부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가시도 잎도 떼지 않은 온전한 모습의 장미 50송이로. 연애할 때는 돈이 없어서 장미 한 송이 선물하지 못했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게 데이트의 전부였다. 결혼한 이후에도 꽃을 준 기억이 없다. 장미꽃다발을 안기며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야지.

현관 안으로 들어섰지만 조용했다. 아무도 없나? 생각하며 안방 문을 열려고 할 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밥은 해 주지. 딱 거기까지야. 촌놈이라 밥만 먹여 주면 아무 불만이 없거든. 아파트도 내 명의로 되어 있고, 현금도 내가 관리해. 그 인간은 돈이 얼마나 있는지도 몰라. 바람피우면 어쩌느냐고? 돈 안 쓰는데 어떤 여자가 붙나? 돈 쓸 줄도 몰라. 얼마나 지독한데. 대학 다닐 때 신던 구두를 아직도 신는다니까. 여자한테 꽃 사 주고 그런 짓 못 해. 설사 바람났다고 해도 알몸으로 쫓아내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사람처럼 비썩 마른데다 허리는 구부정해. 보기 싫어 죽겠어. 돈 못 벌어오면 당장 내쫓을 건데 그래도 아직 몇백씩은 벌어오거든.

방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누워서 전화하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나는 아내 앞에 장미꽃다발을 패대기쳤다. 그리고 마구 밟았다. 가시가 발바닥에 박혔지만 상관없었다. 그 순간 내가 선택한 건 고통이었고, 집중한 건 통증이었다.

하늘이 푸르다. 목발에 의지해 걸으며 나는 푸른 하늘처럼 찬란했던 생의 한 시절을 그리워한다. 

(계간문예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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