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주님의 기도를 세 번 암송하세요.
칸막이 너머에서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고백하는 죄의 종류나 경중에 상관없이 신부님이 내리는 보속補贖은 한결같다. 그동안 나는 ‘주님의 기도’ 이외의 보속을 받아보지 못했다.
성당을 내 집 드나들듯 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방문을 열면 바로 골목이 나오는 쪽방에는 화장실이 없다. 사람들은 모두 공동 화장실을 썼다. 겨울에는 화장실 물이 얼기 때문에 나는 근처에 있는 성당 화장실까지 배를 움켜쥐고 달리곤 했다. 몇 년 전에야 구청에서 효소로 대소변을 분해하는, 물이 필요 없는 화장실을 골목 끝에 지어주었다.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성당 화장실로 달려간다.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그런 곳이 아직 있느냐고 묻겠지만 한강 다리 건너, 말하자면 강남에 이런 곳이 있다.
다섯 살 무렵 나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이곳으로 왔다. 손가락을 쫙 펼쳐서 사람들에게 내보인 게 유일한 유년의 기억이다. 나 외에는 아이가 없어서 그랬는지 나만 보면 사람들은 몇 살인지 물었다. 나는 가끔 할머니에게 엄마 아버지는 언제 오느냐고 보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죽었다는 말만 했을 뿐 왜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내 삶의 터전인 쪽방은 여름에는 찜질방처럼 덥고 겨울에는 골목을 지나는 칼바람이 방안으로 들이친다. 화장실만 없는 게 아니라 부엌도 따로 없다. 세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 재료도 씻는 개수대 한 칸이 전부다. 이 조그만 방에서 할머니는 구슬을 꿰거나 붙이는 일을 해서 삼사십만 원 정도의 돈을 번다. 관절염으로 무릎을 못 쓰게 되기 전에는 건물 청소를 하셨다. 나는 화장실을 쓰기 위해 성당에 가기도 하지만 털어내지 못한 감정이 쌓일 때도 성당으로 간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안온하고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성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가기 위해 성당을 나섰다. 심술부리는 개구쟁이처럼 빗방울이 얄밉게 우산 속으로 들이친다. 좁은 골목길을 내려가자 비에 젖은 나무들 사이로 카페라는 글씨가 보였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계산대가 나타났다. 주문하고 올라가면 2층에서 커피를 준다고 했다. 영수증을 받아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대나무 전등 갓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온 불빛이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어둑하고 좁은 공간은 내게 안도감을 준다. 환하고 넓은 장소에 서면 언제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커피 잔을 받아들고 몸을 돌렸을 때 실내가 실제 이상으로 넓게 느껴졌다. 삼면에 붙어 있는 검은 거울 때문이었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앞에도 내가 있었다. 거울 속의 상이 깊고 선명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오히려 현실이 아닌 거 같았다. 빗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잎들이 거울 저편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사차원 세계 같은 낯선 공간에 친구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탁자 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뒤에야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너는 뭔 고해성사를 그리 자주 해?
그냥 습관 같은 거야.
오늘은 무슨 죄를 사해달라고 빌었는데?
별거 아냐. 근데 내가 어떤 죄를 고백해도 신부님은 늘 주님의 기도를 세 번 외우라고 해. 웃기지?
주님의 기도? 그게 뭔데?
성경에 있잖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는 거.
네가 혼자 세 번 하면 되잖아. 번거롭게 성당에 가지 말고.
그러게.
심드렁한 내 대답에 녀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녀석밖에 없다. 학교 다닐 때 나는 땅콩이나 외계인이라고 자주 놀림을 받았다. 얼굴형이 땅콩 꼬투리처럼 생긴 데다 삐쩍 마른 체형에 팔다리가 유난히 길었기 때문이다. 내가 놀림을 받을 때마다 녀석이 나를 감싸며 역성들었다. 나는 녀석에게 왜 나를 편드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괜히 물어보았다가 하나뿐인 친구를 잃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할머니 몰래 떼어 본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엄마는 아예 없고 아버지는 실종으로 되어 있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죽었다는 할머니의 말은 일면 진실인 셈이다. 부모님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어서 엄마나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친구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녀석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인도어 골프장에서 알바를 했다. 골프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최경주처럼 연습할 모래사장이 없어서 포기했다며 웃었다. 녀석은 캐디가 되었고 나는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땄다. 몇 군데서 일하기는 했으나 정규직으로 나를 받아 주는 회사는 없었다. 6개월 단위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지금은 그나마 단기 계약직 자리도 얻지 못한 백수 신세다. 거울 카페에서 녀석이 내게 캐디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학원비는 빌려줄 테니 나중에 벌어서 갚으라고 했다.
너는 운동 신경이 있으니 잘 할 수 있을 거야.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법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캐디는 개인사업자라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로부터 경기당 12만 원 정도의 수고비를 받는다. 버디를 하거나 홀아웃 한 뒤에 약간의 오버 피를 주는 사람도 있고, 기숙사가 있어서 숙식이 가능한 골프장도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혜택은 못 받는다. 세금을 안 내니까.
오버 피를 잘 받는 요령이 생기면 캐디 피의 상당 부분을 저축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잘만 하면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원룸으로 이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한다는 말을 캐디 양성학원에서 두 번째로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친구야 나를 격려하기 위해 그랬다지만 완전한 타인에게서 칭찬의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강사는 자질이 아깝다고 했고, 골프 선수는 못 되겠지만 훌륭한 캐디는 될 수 있다며 격려해 주었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성적은 나빴다. 그런데 신기하게 퍼팅라인은 잘 읽혔고 경사를 고려한 거리 계산도 정확했다. 이제 누구도 나를 외계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어깨가 펴졌고 밝은 곳에 대한 불편함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처음 필드에 나갔던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날아간 공이 초록색 잔디 한가운데 떨어졌을 때 나는 친구에게 감사했다.
골프장에서 일하게 되어 기뻤던 마음이 하루 만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첫날엔 보지 못했는데 클럽하우스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저희 골프장에서는 남자 캐디가 경기 보조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 캐디를 원하지 않는 경우 미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기랄, 날아갈 거 같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40세 이상은 뽑지 않으니 일할 수 있는 기간도 짧은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줄어들다니.
본당에서 하는 고해성사는 가능하면 짧게 해야 한다. 신부님 두 분에 사제 한 분인데 신도는 팔천 명이나 된다. 판공성사 때는 두 마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기도 한다. 애초부터 나는 길게 고해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누군지 신부님이 모르시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짧게 말하더라도 워낙 자주 하는 까닭에 신부님이 단박에 아실 거 같아서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미워하는 마음을 참회합니다(나를 버린 부모를 죽도록 미워합니다).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습니다(금수저 은수저 말만 들어도 열불이 치솟습니다). 이런 식이다.
성당 좌변기에 앉아 똥을 눌 때 나는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게 해 달라는 기도로 시간을 보낸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하느님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내 소망을 아직 들어주시지 않았다. 가끔은 기도 대신 누군가를 죽이거나 내가 죽는 상상을 한다. 대상에 따라 살해 방법이 다르다. 총으로 이마를 쏠 때도 있고, 목을 조를 때도 있고, 칼로 찌를 때도 있다. 나 자신을 죽일 때는 사막이나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방법을 선호한다.
성수기에 접어든 골프장이 3부제로 운영된 탓에 나도 바빠졌다. 홀 당 주어진 시간은 5분. 4명이 5분 안에 퍼팅까지 끝내야 한다. 자주 필드로 나오는 사람들은 내가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다. 해저드 위치와 바람 방향이나 퍼팅라인 정도만 알려주면 된다.
문제는 골프 연습장 월례회에서 머리 올리러 오는 사람들이다(어디서 유래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필드에 나가는 걸 ‘머리 올린다’라고 한다). 채를 몇 번 휘둘러보지도 않은 채 필드에 나오는 사람이 많고, 몇 타를 쳤는지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공이 제멋대로 날아다닌다. 함께 경기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도 없다.
골프는 동반자에 따라 컨디션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량이 비슷한 사람끼리 치는 걸 선호하는 운동이다. 4명이 조를 이루지 않으면 예약이 어렵다. 그러니 초보 시절에는 월례회에 섞일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머리를 올리고 싶은 초보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년 여성 네 명을 보조한 날이었다. 세컨샷을 치기 위해 카트를 몰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네 사람의 공 위치와 핀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알맞은 채를 쥐여 주었다. 그런데 두 여자가 세컨샷 위치에 그대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고성이 들렸다. 뚱뚱한 여자가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자의 공을 친 모양이었다.
자기 공도 못 보고, 점수 셀 줄도 모르면 필드에 나오지 말아야지.
너는 엄마 뱃속에서 골프 배워서 나왔니?
머리를 묶은 여자가 도저히 같이 못 치겠다며 클럽하우스로 가자고 말했다.
사모님. 점수는 제가 알아서 적을 테니까 편히 치세요. 공 위치는 제가 더 잘 살필게요.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잖아요. 그만 마음 푸세요.
마음 풀라니, 내 마음이 꼬이기라도 했다는 거야?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말할 줄도 모른다니까.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젊은 것들 운운하며 내게 화풀이를 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어서 카트에 타시라고 달랬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로 골프장에서 휴장을 결정한 경우 플레이 한 홀만큼 돈을 받는다. 고객이 스스로 경기를 포기한 경우에는 전액 다 받는다. 그러나 여자가 내게 핑계를 대며 플레이한 홀만큼만 주겠다고 우기면 시끄러워진다. 싸움은 자기들이 하고 피해는 내가 볼지도 몰랐다. 나는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빌었다.
신부님, 나 자신을 없애고 싶어요.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였나 봐요. 그러니 부모님이 나를 버렸겠죠. 저는 버림받았고 거부당했어요.
부모님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버림을 받은 건 분명했다. 신부님은 하느님이 뜻이 있어서 태어나게 한 거다. 열심히 기도하면 어떻게 쓰일지 해답을 주실 거다. 그러니 기도하라고 하셨다. 기도라면 매일매일 하고 있다.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방으로 이사 가게 해 달라고. 그깟 소원 하나 못 들어 주면서 무슨 하느님인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신부님이 계속 나를 달랬다. 나는 더 듣기 싫어서 보속을 받지도 않고 고해소를 나왔다. 어쩐지 서운하고 찜찜했다. 성전에 앉아 기도하다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올려다보았다.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외쳤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성당 안에 울려 퍼지는 거 같았다. 그 당시 예수님의 심정이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는 내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는 탄생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골프장이 휴장이라 친구와 소주를 마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우울감을 더했다. 괄괄한 편인 녀석이 감정 노동자에 가까운 캐디를 한다는 사실이 안쓰러웠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불쑥 물었다.
전쟁터에서 말이야, 싸움은 누가 하지?
그야 병사들이 하지.
만일 병사들이 없으면 장군이 나가서 싸울까?
장군은 안 싸울 거 같은데. 명령이나 하는 사람이잖아.
장기판에서 차나 마나 졸이 모두 잡아먹히면 상대가 ‘장군’ 하고 외치겠지.
당근이지.
그래서 나는 졸을 없애야 된다고 생각해. 첨엔 왕을 없애려고 했지만 딴 놈이 왕이 되면 소용없잖아. 백성이 모두 사라지는 게 맞아.
너 안드로메다에서 왔냐? 뭔 말을 하는 거야?
친구는 가진 인간들이 싫다고 했다. 기・득・권・자라 불리는 것들이 싫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양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녀석들. 잘난 부모덕에 대학이든 직장이든 노력 없이 들어가는 새끼들. 월급은 두 배나 받으면서 일은 비정규직에게 시키는 정규직들. 돈 좀 있다고 갑질하는 인간들.
졸을 없애야 해. 일벌이 사라지면 여왕벌은 저절로 사라져. 여왕벌은 스스로 꿀을 모을 능력이 없으니까.
장기판이며 졸이며 여왕벌이며 꿀이며, 어쩌라는 건지, 어쩌겠다는 건지. 녀석은 촛불 드는 날이 골프장이 가장 바쁜 주말이라 참석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며 먹고 사는 거 말고 더 큰 문제에 관심 좀 가지라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나만의 화장실을 가지게 된 이후에 다른 문제에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정의가 바로 서야 네가 공동 화장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녀석이 눈을 치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새벽 6시 30분. 골프동호회 팀의 첫 주자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남자가 티 박스에 올랐다. 1번 홀은 지대가 낮아 새벽에는 자주 안개가 낀다. 나는 빨갛게 빛나는 안내 등 불빛을 향해 공을 치라고 말했다. 딱 소리와 함께 공이 안내 등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그쪽에는 깊은 벙커가 있다. 멀리건을 주기로 한다. 멀리건이란 동반자들이 한 번 더 치도록 양해해 주는 것이다.
빈 스윙 몇 번 하시고 다시 치세요.
남자가 다시 친 공도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지는 곡선을 그렸다. 힘이 좋아 공을 멀리 날리기는 하는데 방향이 엉망이었다. 나는 남자의 드라이버를 받아 수건으로 닦았다. 남자가 자기 드라이버에는 매번 커버를 씌워서 백에 넣어달라고 말했다. 라운딩을 끝내고 커버를 씌우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다.
남자의 공이 제일 멀리 날아갔기 때문에 세 사람에게 공이 떨어진 위치를 알려주고 남자와 함께 벙커로 갔다. 항아리처럼 생긴 깊은 벙커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하얀 공이 마치 꿩의 알 같았다. 턱이 높은 벙커에서 탈출하려면 공을 높이 띄워야 한다. 클럽 헤드를 열고 3cm 정도 공 뒤의 모래를 치라고 조언했건만 딱 하고 공 맞는 소리가 났다. 공은 벙커 턱을 넘지 못하고 도르르 굴러 내렸다. 몇 번을 쳐도 결과는 같았다.
꺼내 놓고 치세요.
남자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탈출을 시도했다. 무전기가 울렸다. 뒤 팀의 캐디가 빨리 앞으로 나가라고 독촉했다. 무전기 소리를 듣고서야 남자가 벙커에서 나왔다. 남자에게 세컨샷 칠 방향을 알려주고 벙커로 내려가 고무래로 모래를 정리했다. 모래 정리는 공을 친 사람이 하는 게 규칙이지만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으니 내가 해야 했다.
5번 홀부터 시야가 확 트였다. 공 찾기가 수월해져 기분이 나아진 것도 잠시, 남자의 티샷이 코스의 경계를 표시하는 흰 말뚝을 넘어갔다. OB가 나면 벌점 하나를 받고 다시 쳐야 한다. 남자는 3번의 멀리건을 이미 다 썼다. 또다시 OB가 나자 남자가 클럽을 던졌다. 클럽을 던지다니…. 경기 중이었다면 벌점을 받거나 실격 처리될 수도 있다. 천천히 클럽을 주워드는 나를 보며 남자가 젊은 놈이 동작이 느리다고 핀잔했다.
고해소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고백했다.
어제 어떤 남자를 골탕 먹였습니다. 동작이 느리다, 눈치가 없다, 하면서 스트레스를 내게 푸는 거예요. 나이 먹은 게 훈장이라도 되는지 말끝마다 ‘젊은 놈이’를 붙이는 게 정말 싫었어요. 그들은 홀마다 가장 적은 타수를 친 사람이 돈을 가져가는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일부러 퍼팅라인이 살짝 어긋나게 남자의 공을 놓았고, 남자는 계속 돈을 잃었어요.
일 분 정도가 지날 때까지 칸막이를 넘는 말이 없었다.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고백이라서 놀라신 걸까?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나 상황의 영향을 받아 마음의 평화를 잃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라고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3번 암송하라는 보속을 주셨다.
친구가 거울 카페로 나를 불러냈다. 어둡고 은밀한 방들이 거울 속에 있었고, 방마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친구와 내가 있었다.
니네 골프장도 농약 많이 치지?
친구가 물었다.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는지….
KLPGA 대회가 열릴 예정이라 난리도 아니다. 왜?
잔디에 뿌리는 제초제 중에 ‘아트라진’이라는 성분이 있거든.
그래서?
이게 남성 불임을 유발해. 잔디밭이나 옥수수밭에 주로 뿌리는데, 골프장에서 쓰는 양이 엄청나.
헐! 우리가 그리되는 거 아냐? 우리 일턴데.
결혼에 대한 소망이 없으니 자식에 대한 소망 역시 있을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나왔다.
어른들은 큰 영향 없대. 그래도 태아나 유아들에게는 치명적이래.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흡수해야 그리 되는 건데?
나도 모르지. 옛날에 말이야, 중국에 어느 영감이 산을 옮길 거라며 삽질을 시작했다네? 언제 다 옮기겠냐고 했더니 내 아들과 아들의 아들과 아들의 아들의 아들과…, 계속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게 중요하겠지.
이해가 되지 않아 멍때리고 있는 나를 보며 녀석이 씩 웃었다. 무슨 말인지 물었지만 녀석은 뒷말을 얼버무렸다.
골프공을 치는 순간 골프채가 잔디를 떠내게 되는데 뜯겨나간 잔디 조각을 디봇이라고 한다. 디봇으로 흙이 드러난 곳에 잔디 씨앗이 섞인 모래를 붓고 꼭꼭 밟아주는 게 캐디들이 해야 하는 또 다른 일이다. 잔디 보수를 위해 모래를 가지러 창고에 들어갔을 때였다. 안쪽에 있는 커다란 농약 통들을 보는 순간 불현듯 녀석의 말이 생각났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가지고 있던 생수병의 물을 버리고 농약을 옮겨 담았다.
그날 이후 고해의 내용이 달라졌다.
“제가 도둑질을 했습니다.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훔쳤습니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참회합니다.”
신부님이 처음으로 다른 보속을 주셨다. 주님의 기도가 아니라 성모송이었다. 성모송을 외우는 동안 태중의 아들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가슴을 칠지도 모를 수많은 태중의 아이들과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들. 탄생이 축복이 아닌 나 같은 아이들. 그런 탄생은 없어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만 외우고 성당을 나섰다.
살다 보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날은 진짜 재수 없는 날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티샷이 계속 슬라이스가 나며 오른쪽으로 엄청 휘었다. 나는 남자가 드라이버 대신 우드나 아이언을 잡았으면 했다.
이 홀은 공이 오른쪽으로 휘면 12번 홀 그린으로 날아갈 수 있어서 위험해요. 드라이버로 치지 말고 우드나 아이언 잡으세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지 남자가 드라이버를 들고 티 박스 위로 올라갔다. 나는 공이 똑바로 날아가기를 기도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딱 소리가 났고, 공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나무들을 넘어 멀리 날아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보올….
내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무전기가 울렸다. 남자의 공이 12번 그린에서 퍼팅하던 플레이어의 머리에 맞았다는 것이다.
큰일 났어요. 고객님 공이 다른 고객의 머리에 맞았대요.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우드나 아이언으로 치시지.
내 말을 무시했다는 걸 잊었는지 남자는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내게 화를 냈다. 빨리 클럽하우스로 가야 한다고 하자 남자의 동반자들이 자기들끼리 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사람이 다쳤다는데 공 칠 생각만 하다니. 빨리 카트에 타시라고 말하고 클럽하우스로 갔다. 공에 맞은 사람이 수건으로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수건이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그제야 남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과장님이 다친 사람과 남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떠났다. 티셔츠까지 피가 흘러내린 것으로 보아 중상을 입은 건지도 몰랐다. 골프공이 얼마나 단단한가. 게다가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캐디가 잘 알려 줘야지. 그러라고 돈 주는 거 아냐? 요즘 젊은 것들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니까!
그러게, 새벽부터 왔는데 공도 못 치고.
에이, 재수 옴 붙었다.
남은 세 사람이 불평을 쏟아냈다.
갈비뼈 금 갔다는 말은 들었어도 머리 깨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평생 구경하기 힘든 거 본 거지 뭐.
그들은 걱정은커녕 신기한 광경을 본 것처럼 낄낄거리기까지 했다. 뚜껑 열린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무슨 말이든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보올 하고 소리 지르던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되살아났다.
저는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골프백 챙기세요.
나는 서둘러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산길을 돌아 내려가는 내내 피에 젖은 수건이 떠올랐다. 정형외과와 일반외과가 있어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읍내에 딱 하나뿐이었다. 응급실로 뛰어갔다. 과장이 불안한 얼굴로 응급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과장님, 어떻게 되었어요?
CT 찍고 있어. 의사가 뭐라는지 들어 봐야지. 도대체 어찌 된 거야?
드라이버 샷이 계속 슬라이스가 났어요. 그 홀에서는 OB가 나면 위험하다고, 12번 홀 그린으로 공이 날아간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드라이버로 치지 말라는 말은 안 했고?
했어요. 그분이 고집이 되게 세시더라구요. 한 번도 제 조언을 따르지 않았어요.
같이 플레이한 사람들도 들었지?
네. 아이언이나 우드 잡으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바위에 맞은 공이 튀어나와 공 친 사람 눈에 맞은 사고 알지? 캐디의 조언을 무시해서 난 사고인데도 억대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났어. 우리도 큰일났다. CT 결과가 잘 나와야 하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과장을 향해 걸어왔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어서 몇 바늘 꿰매면 된다고 말했다. 과장은 내게 돌아가서 사유서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으로 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었다.
신부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이라도 확 질러버리면 속이 시원할 거 같기도 하고요. 가슴이 답답해요. 세상도 싫고 사람도 싫고 살기도 싫어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햇볕이 잘 드는, 화장실 딸린 방 한 칸 얻기 어렵고 퇴직금도 연금도 없어요. 희망이 없잖아요. 보속을 주신 이후에 신부님은 심리 상담 봉사를 하는 교우를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으셨다. 일정을 잡아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나운 빗방울이 쪽방 지붕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친구가 새로운 카페로 오라고 했다. 스마트폰의 네비까지 켜고 주택가 골목길을 뱅뱅 돌았다. 녀석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지 늘 구석지고 한적한 곳으로 나를 부른다. 막다른 골목에 작은 간판이 보였다. 반지하에 있는 카페는 머리가 닿으면 어쩌나 걱정될 만큼 천장이 낮았다. 칵테일바나 회전초밥집처럼 카운터 앞에 의자가 몇 개 놓여 있고, 테이블이 4개 밖에 없는 작은 카페였다. 결사대의 비밀 회합 장소 같은 은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매트릭스의 오라클을 닮은 여자가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쿠키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아라비카 원두커피에 쿠키까지 단돈 2,000원. 커피는 향이 좋았고 쿠키도 맛있었지만 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왜 그래? 완전 죽을상이잖아.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어서 말해 봐.
나 소송 걸릴지도 몰라.
나는 골프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머리 깨
진 남자 이야기였다.
네 손님이 OB를 냈고, 옆 홀 그린으로 넘어가서 퍼팅하던 사
람 머리에 맞았다는 거잖아. 몇 바늘 꿰맸고, 다른 이상은 없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 했다며?
응, 그래도 소송 걸지 모른대. 치료비는 골프장에서 보험 처리 했는데 정신적인 피해를 보상하라고 한다나. 사람들이 싫어.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지고집 대로 하다 그리 된 거야. 같이 온 인간들도 다친 사람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공 못 치게 되었다고 짜증만 내더라니까. 그 인간들 확 죽이고 싶어. 짜증나고 살기도 싫고.
진짜 그만해서 다행이다. 우리가 하는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하다가 다쳐도 배상해야 된다더라. 있는 놈들이 오니 수억씩 배상하는 경우도 있대. 무조건 좋은 자리에 놓고 치라 해라.
내가 적극적으로 드라이버로 못 치게 말리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하니 너무 억울해. 그 남자가 소송 걸면 나도 재판받으러 가야 된대. 무서워. 얼마를 배상하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
너 말이야, 미다스의 손이라는 말 알아?
녀석이 물었다.
알지. 만지는 건 모두 금으로 변한다는 왕 이야기잖아.
그 미다스와 실레노스라는 정령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네.
뭔 대화?
미다스가 실레노스에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었대.
그래서? 실레노스가 뭐라고 대답했대?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거라고 했대.
내 생각하고 완전 똑 같네. 나도 늘 그런 생각을 하거든. 신부님께 묻기도 했어.
녀석이 오묘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위로하려는 건지 달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고해소는 칸막이가 크던데 우리 성당 고해소 칸막이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다. 서로의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신부님께 떼를 쓰고 싶었다.
부모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번듯한 직업도 없고, 못생겼고,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사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하느님이 나를 만들었으니 책임도 하느님이 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초미세먼지만큼의 자취도 남기고 싶지 않다….
묵묵히 듣고 계시던 신부님이 온유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한다면 잘해 줘야 하잖아요? 부모도 주지 않고, 기회도 주지 않고, 차별과 고통 속에서 살게 하는 게 사랑인가요?
나중에 틀림없이 크게 돌려주실 겁니다. 믿으세요. 욥은 끝까지 믿어서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아, 저는 욥기가 제일 싫어요. 욥의 죽은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나요? 욥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신부님이 내 말을 잘랐다.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3번 암송하라는 보속을 주셨지만 나는 따르지 않았다.
지붕을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 쏟아지는 장대비에 쪽방 앞 골목은 개천으로 변했다. 성당으로 가지 못하고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다.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서 난폭한 빗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친구가 나오라고 했다.
싫어, 비가 너무 많이 와. 골목을 벗어나기도 전에 바지까지 젖을 거야.
차 가지고 왔어. 장화를 신든가. 장화 없어?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대로변으로 나갔다. 흰색 SUV가 비상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내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녀석이 올림픽 대로로 차를 몰았다.
어디 가는데?
가 보면 알아.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표지판도 없는 작은 길로 빠져나갔다.
여기 잘 봐 둬. 네비에 찍을 주소 같은 게 없어서 찾기 어렵지만 그만큼 은밀하게 주차하기 좋아.
은밀해서 어떻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나는 녀석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들었다. 커다란 나무 밑에 차를 세운 녀석이 내리라고 했다. 발아래 보이는 건 정수장이었다. 하루 50만 톤에 달하는 물을 처리하는 이 정수장은 내가 더 잘 안다. 녀석이 이상한 길로 꼬불꼬불 왔기 때문에 여기로 오는지 몰랐을 뿐이다. 내가 자격증을 따고 맨 처음 취직한 곳이었다.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단기계약직이라 6개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일은 비정규직이 다 하는데 월급은 절반에 불과했고 잔소리만 엄청 들었다. 시간제 알바가 차라리 마음 편했다.
CCTV에 찍혀도 모자만 쓰면 문제없을 거 같지 않아? 철조망도 없고.
나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간 모아둔 농약병이 떠올랐다. 뭐야, 같이 농약이라도 타자는 건가? 벌써 탔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나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밤에 정수장을 드나들기라도 한 모양이네.
녀석을 위해 모아둔 제초제를 생각했다. 잘 할 수 있다는 말도, 자질이 있다는 말도 녀석에게서 처음 들었다. 녀석은 친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녀석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었다. 혁명을 하자면 동지가 되어주고, 도둑질하자고 해도 기꺼이 동참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찌질하게 굴지 말고 뭔 행동이라도 하란 말이지. 전봇대를 뽑아서 네 콧구멍에 있는 코딱지라도 빼 주리?
혹시라도 농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얼른 내놓을 생각이었다. 기뻐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짜릿했다. 그런데 찌질하게 굴지 말라니. 전봇대를 뽑아서 코딱지를 파 준다고 조롱하다니. 차라리 함께 물에 제초제를 타자고 하지. 이상하게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서늘해진 내 표정을 읽었는지 녀석이 푸념하듯 말했다.
농약을 확 풀어버릴까 이런 생각을 내가 자주 한다고.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녀석은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끝으로 돌멩이만 차고 있었다. 기득권이니 여왕벌이니 아트라진이니 그런 말들은 도대체 왜 했을까? 나는 정말 찌질한 루저일까?
골프공에 맞아서 머리가 깨진 남자는 결국 소송을 걸었다. 조만간 나는 법정에 서야 한다. 매 순간 불안하고 초조했다. 내 발이 나를 고해소로 이끌었다.
신부님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면서요? 자신의 모습을 본떠서. 그런데 왜 악한 인간은 많고 선한 인간은 적은 거죠? 착하다는 말은 바보라는 뜻으로 통하죠. 자신의 몸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악한 인간들이 가진 게 너무 많아요. 나는 영원히 그들을 이길 수가 없어요.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입니다.
저더러 어쩌라고요. 언제까지나 참기만 하라는 말씀이세요?
주님의 기도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나는 ‘주님 제발 판사가 제게 책임을 묻지 않게 해 주세요’를 3번 했다.
법정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송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지만 일을 쉴 수는 없었다.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그 집마저 잃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소개로 회원제 골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퍼블릭 골프장에 오는 사람들보다 공도 잘 치고 매너도 좋아서 일하기 편했다. 오버 피를 주는 사람도 많았다.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중년 여자의 가방 속에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여자는 가방 지퍼를 열어 놓고 파를 하면 만 원, 버디를 하면 이만 원을 주었다. 잔디를 관리하는 인부들에게도 다가가서 만 원씩 주었다. 홀아웃 때 삼만 원, 골프백을 차에 실어주니 고맙다며 또 만 원을 주었다. 그런데 함께 라운딩한 남자는 버디를 네 개나 하고서도 단돈 만 원을 주지 않았다. 남자는 리셉션의 아가씨와 주차 관리인까지,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만 원짜리를 뿌리는 여자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나는 여자에게서 캐디 피와 맞먹는 12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한 가방과 사방에서 울리는 사모님 소리가 떠오르며 머리에 쥐가 났다. 그날은 더 많은 양의 제초제를 옮겨 담았다. 제초제를 패트병에 옮겨 담는 짧은 순간만큼은 신기하게도 우울감이 사라졌다.
밤마다 스마트폰으로 구글링을 하며 제초제 성분을 조사했다. 미량의 아트라진이라도 임산부가 마시면 태아는 불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정수장에서 일할 때는 관심도 없었던 물 연구원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다. 2019년 8월 취수 원수와 정수 수질 검사 결과가 떠 있었다. 총 60개에 달하는 정수 수질검사 항목에 아트라진은 없었다. 검출된 유해영향물질도 오직 질산성 질소와 붕소뿐이었다.
나는 흰색 SUV에 배낭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어두웠고, 바람이 사납게 불었으며 빗방울들이 미친 듯 춤을 추었다. 번개가 번쩍일 때만 차선이 살짝살짝 드러났다. 검은 하늘에서 붉은빛이 별똥처럼 쏟아져 내렸다. 땅이 움푹 꺼지는 게 보였다. 함몰된 땅에서 버섯구름이 높이 솟아올랐다. 물결이 퍼지듯 동그라미를 그리며 땅이 계속 가라앉았다. 고환이 쪼그라든 아기들과 남녀 성기를 모두 가진 아이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익숙한 냄새가 밀려왔다. 창고에서, 패트병에서 나던 역한 냄새였다.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달리고 또 달렸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참회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제가 모르는 죄까지 모두 용서해 주세요. 고해성사의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고백해야 하건만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친구는 졸을 없애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는 둥, 실레노스가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는 둥,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다. 눈물이 솟구치며 목이 메었다. 하느님이 있기나 한지, 왜 이렇게 차별을 하시는지, 존재할 이유나 가치가 없는 것 같은 나를 왜 태어나게 하신 건지? 둑이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이 격해졌다.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할 즈음 신부님이 큰 소리로 사죄경을 읊기 시작했다.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를 통하여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사죄경이 끝나도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훌쩍이는 나에게 신부님이 나직한 목소리로 인제 그만 울음을 멈추시라고 말했다.
다시는 나 같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의 섭리로 내가 태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어요. 태어났으면 빨리 죽는 게 행복이래요.
아, 좀 그만 괴로워하세요.
신부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개인의 행복이 절대 가치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고민하세요.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된 지 오랩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는 뉴스가 매일 나오다시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제일 많이 듣는 고백이 가족 간의 미움에 관한 것입니다. 혼배성사를 할 때마다, 미사를 집전할 때마다, 서로 사랑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고 당부했는데 철저히 거부당한 겁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거부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은 바로 납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께 새로운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천지창조 이전으로 되돌려서 다른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실 수 있게 말입니다.
신부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진의를 파악하기도 전에 신부님이 보속을 주셨다.
주님의 기도 세 번 암송하세요.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성호를 그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아멘’이 아니라 ‘은밀하게’였다.
(시선,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