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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Feb 26. 2021

우리 모두가 외로운 이곳에

                                                                                                                                            자주 외로웠고 이제는 익숙해졌다.

단순히 친구가 없어서 애인이 없어서 외로운 느낌이 아니다.

왜냐면 난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고,

평생 함께 하고픈 친구들도 있는데?


단지 나 자신으로써, 이 땅에 태어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깊고 오래된.


가장 환했던 것 같기도 가장 어두웠던 것 같기도 한

내 어린 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작고 또 작은 어린 나는 외로울 틈 없이 활기찼던 것 같은데

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외로워질까.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 조그만 아이가 커서 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그 상태로 어딘가에서 아득바득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커온 지금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친구를 사귀고 감정을 공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외로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외로움에 휩싸여서 우울에 빠진 채로

세상을 원망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진 않는다.

그냥 이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다 가지고 있을,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 그런 감정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느님도 가끔은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데

작고 작은 내가 무슨 수로 그 외로움을 무찌르겠냐..

그냥 익숙해지는 것 밖에 답이 없지 않을까 하고 익숙해진 상태인 거지.


전엔 외로움에 익숙지 않아서 외롭지 않기 위해

누굴 만나거나 바깥으로 자주 놀러 나갔다.

근데 그 순간뿐이지 후엔 자괴감에 자주 빠지곤 했다.

그리고 배우게 된 건 이 근본적인 외로움은 바깥에선 충족할 수 없다는 것.

그걸 알게 된 지금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 또 다짐.




근데 외로움을 익숙하게 만든다는 거 곱씹을수록 슬픈 말인 것 같네

하지만 외로움?! 이게 또 나에게 우울하기만 한 말이 아니다.

외로울 때 내 옆의 사람들이 더 소중해지고

행복한 앞날을 꿈꾸게 되고 뭐 이런 생각들이 들곤 하니까.




뭐 외로움=우울함 이건 아니라는 소리지

외로움은 그저 외로움. 벗어날 수는 없지만 얽매이지도 않는?

뭐 그냥 태어나 보니 인간으로서 평생 가지고 가야 할 감정 정도라는 것? 이런 걸 숙명이라고 하나.. 되게 엄숙한 단어네? 나랑은 안 어울린다:]


내가 좋아하는 책 속 글 중에


<나는 내 우울을 감당할 수 있다. 덜어낼 수도 또 더할 수도. 내 우울을 파우치처럼 그저 가지고 다닐 뿐이다.>


이런 내용이 있는데 진짜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는 내 우울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우울에 빠지고 나면 그건 턱도 없는 소리고

외로움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외로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견뎌내는 것

이라는 내 이상한 논리와 함께.                                              



트위터에서 본 그림인데 마음이 가길래. 내 하찮은 글이 이 그림과 함께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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