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십 만원을 주면서 개미 한마리만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돈을 받아 들이며 눈앞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죽였다. 며칠 후 그 사람이 다시 오더니 백 만원을 건네주면서 사나운 개 한마리만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 나는 집세가 밀리고 하루 한 끼 먹는 걸 호사로 생각했어야 할 시기였고, 나의 죄책감은 현실의 돈을 이기지 못했다. 온순한 개도 아니고 사나운 개는 해로우니 괜찮겠지라고 합리화를 하며 죽였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그 사람이 준 백 만원은 애초에 밀린 집세와 라면박스를 산다고 다 써버리고 지금은 라면 한 개가 나의 전 재산. 마지막 라면 하나를 뜯었을 때 그사람은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일 억이라는 나에게 너무나 큰 돈을 들고선. 그가 한 부탁은 평소와는 달랐다. 자신이 홧김에 누군가를 밀어버려서 그 사람은 즉사했다고 했다. 산에 그 남자를 묻으러 가고 싶은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가겠다고, 같이 묻으러 가자고 부탁했다.
꺼림칙했지만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땅에만 묻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뭐. 일 억,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도 일억은 그것조차 지워버리는 큰 액수였다. 돈 많아 보이는 이 사람에겐 무서우니 같이 가자고 도움을 청하는데 쓰는 돈일지라도 나에겐 구원줄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해 줄 돈이었다. 나는 남자를 따라 산으로 갔다. 처음 만져보는 시체에 겁먹고 덜덜 떨긴했지만 묻고나서 받은 일 억이라는 돈은 나의 겁조차 사라지게 했다.
삼 년이었다. 삼 년. 그 남자에게 받은 일억이라는 돈을 다 써버리는데 걸린 시간. 현재 집보다 조금 더 나은 월세 방으로 옮기고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내가 살기위해 발버둥을 친 것보다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내 발목을 억죄여오는 빚이라는 게 더 우세했다. 내가 돈이 생길 때 마다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 가져가버렸다. 그렇게 난 삼 년후엔 전에 살던 집보다 더 좁은 월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보증금도 없이 월 10.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좁은 집, 집이라 부르기도 뭐한 방. 그런 곳에서 쥐와 바퀴벌레, 온갖 벌레들과 함께 지냈다. 가만히 누워 나의 끝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나에게 돈을 내밀던 남자가 생각이 났다. 그 남자는 나에게 돈이 간절할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채고 돈을 내밀었다. 물론 그에 뒤따르는 조건이 있었지만 크게 어려웠던 것은 없었다.
쾅쾅- 남자의 생각을 하자 놀랍게도 남자가 찾아왔다. 두 번이나 이사한 집을 어떻게 찾아왔나 놀랍기도 했지만 십억이라는 돈에 더 놀라 나의 집을 어떻게 찾아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처음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사람 한 '마리'를 죽여 달라고. 마치 개미를 죽여달라고 했던 것과 똑같은 억양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만 배나 더 많아진 돈. 나는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 들이기도 전에 십억이라는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산부터 했다. 저 돈이면 팔 억이라는 빚을 갚고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이곳 보다는 훨씬 좋은 집에 물로만 배 채울 일도 없다. 아주 혹하는 돈이었다.
그러나 선뜻 남자의 거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양심, 그리고 죄책감. 남자는 나의 생각을 알아채곤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 사람은 인간 취급도 못 할 아주 쓰레기야. 자식을 낳아 놓곤 다른 남자랑 뒹굴었지, 심지어 애 아빠가 누군지도 몰라. 그 사람은 자꾸만 귀찮게 구는 애의 목을 졸라서 어디론가 갖다 버렸어.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야? 동물들도 못 하는 행동이야. 이 사람은 악마보다 더 잔혹해. 남자의 말을 홀린 듯이 들었다. 남자는 쐐기를 박듯이 한 번 더 은밀히 속삭였다. 그건 아주 작은 소리였고 모든 신경을 귀로 집중해야만 들을 수 있었다. 너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넌 그저 버튼만 누르면 돼. 그 여자의 얼굴을 볼 필요도 없어. 아주 간단한 거야. 그렇지? 나는 멍청히 입을 벌리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나는 남자에게 끌려 어느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경찰서 취조실과 흡사한 구조. 큰 유리창이 있고 옆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유리창 안에는 얼굴에 복면을 두른 사람이 의자에 묶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유리창 바로 밑에는 단 하나의 빨간 버튼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자가 말한 버튼이 저것이겠지. 그냥 저 앞까지 걸어간 후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망설이게 되는 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 때문이겠지. 나는 괜히 유리창을 두드려봤다. 그런데 그 소리에 반응하 듯 고개를 숙이고 미동조차 없던 사람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선 축 쳐져 있던 몸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건지 내가 보여서 그런 건지 아무튼 섬뜩한 기분에 뒷걸음질 쳤다.
텁-하고 누군가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경직된 몸을 억지로 돌려 누군가를 보려 안간힘을 썼다. 목만 간신히 돌려 본 누군가는 나에게 돈을 내밀던 남자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의 양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마치 이 이상 도망치지 말라는 듯이 견고하게 쥔 어깨가 아팠다. 그 남자를 밀쳐 내곤 빨간 버튼 앞에 섰다. 이걸 누르면 도대체 어떻게 죽는 걸까.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냐고, 고통스럽게 죽냐고. 남자는 우스운 걸 들었다는 듯이 과장되게 고개를 젖히며 웃더니 돌연 웃음을 멈췄다. 자신이 장담하건데 저 자는 아프게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선 어디서 나타난 건지 돈 가방을 나의 발치로 던졌다.
그래, 십 억. 십억이야. 얼굴도 모르고, 저 사람도 나를 못 볼 거야. 괜찮아, 괜찮아. 나는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유리창 너머의 방 천장이 열리더니 날카로운 칼들이 여자를 향해 꽂혔다. 머리부터 허벅지, 살짝 보이는 발까지 여자의 온 몸에 칼이 꽂혔다. 여자는 고통에 미친 듯이 발버둥 치고 소리를 내려는 듯 꺽꺽 거리다가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고통스럽게 죽지 않는다며! 여자의 끔찍한 죽음에 나의 사고가 멈췄다. 나는 녹슨 기계처럼 몸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문을 열더니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선 여자의 머리에 꽂혀있는 칼을 뽑아냈다. 그러자 여자의 몸이 움찔거리며 떨렸다.
"재밌는 얘기 해 줄까?"
남자는 천천히 여자의 복면을 벗겼다. 드러난 얼굴은 피 때문에 알아 볼 수 없었다.
"네 어미야."
뭐? 나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그런 나에게 남자는 정확히 눈을 맞춰오며 얘기했다.
"그 아기는 목이 졸려 어디론가 버려졌지. 한 고아원 앞에 말이야. 아기는 살았어. 왜냐고? 내가 살려줬었거든. 후에 이 여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그 아기를 찾더라고. 나는 일부러 아기를 감추고 여자를 쫓아냈지. 그래도 마지막 성의로 매 년 아이의 사진을 한 장씩 보내주긴 했어."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남자가 하고 있는 저건 내 얘기다. 다만 의문이 든다면 난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남자의 얼굴을, 그 비슷한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
"아, 이 얘길 까먹을 뻔 했네. 이 유리창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특수한 유리창이 아니야. 안팎으로 다 보이지. 특수한 건 이 복면. 이게 신기하게도 쓰고 있는 사람은 밖이 보이거든. 내가 개발 해 낸 거야. 멋있지?"
남자는 미친 사람 마냥 히죽히죽 웃었다. 나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자마자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내 뒷머리를 내리친 기분이었다. 남자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 여자는 내가 자신의 아들인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아니야, 난 모르는 사람이야. 누군지도 모른다고. 아주 오래전에 나를 버렸던 어머니의 얼굴은 생각조차 안나.
"흐히힉, 흐힉. 히힉. 너무 재밌지 않아? 돈 때문에 어미를 죽인 아들. 이거 아주 소설 같은 얘긴데? 히히힉!"
남자는 여자의 시신 옆에서 미친 듯이 웃더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몰려오는 공포에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 어깨가 잡혔다. 도대체 어느 틈에? 남자에게 잡혔기 때문일까, 공포 때문일까. 굳어버린 몸은 손가락 하나도 까닥 하지 못했다. 남자는 나의 몸을 돌려세우고 자기를 바라보게 했다. 그리곤 갑자기 남자는 과장되게, 하지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마치 연극이 끝날 때 하는 그런 인사였다. 남자는 나를 지나치더니 온통 캄캄한 곳으로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악마의 쇼>를 끝까지 관람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저는 이 남자의 양심과 죄책감을 없앴습니다. 약 사 년 만에 평범하던 남자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남자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나는 움직이고 싶어도, 말 하고 싶어도 꼼짝도 못했다. 이상하다 싶었을 때 남자는 하늘로 팔을 뻗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버림받았던 기억에 사람은 하찮다고 여긴 걸 까요? 아니면 저의 말에 넘어갔던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돈 때문에?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죠. 저는 이 남자 안의 가능성을 이끌어 낸 거죠.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그 결과는 확실했습니다."
남자는 돌연 움직임을 멈추더니 검지를 입술에 댔다. 그리곤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도 소곤거렸다.
"아시다시피 저는 악마입니다. <악마의 쇼>는 누가 대상이 될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언젠가는 당신에게 갑니다. 그리고선 당신의 가장 음습하고 위험한 가능성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언제나 저를 두려워하세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경계하세요. 제가 당신에게 다가가지 못 하도록.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과장되게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