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의 아이가 사는 세상이야기
나의 부모는 단 한 순간도 내게 의사를 물었던 적이 없었다.
이혼하는 그 날도,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난 그 날도.
그녀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술만 마시다가 그녀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녀는 4남매 중 가장 영리했지만, 그녀의 엄마는 여자였던 그녀가 공부보다는 하루빨리 돈을 벌어 오빠들의 뒷바라지하기를 원했다. 그녀와 함께 공부하던 친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그녀는 화장품 판매점에 취직했다.
가난에 질려버린 그녀는 옆 동네 부잣집 막내아들인,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그와 한 번의 선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그녀가 겪었던 가난에 비하면 졸부 집안의 높은 콧대도, 고된 시집살이도 모두 견딜 만했다. 하지만 그녀의 둘째 딸이 어린이집을 가야 하는 나이가 되자, 시어머니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상경하기로 했다. 자신의 두 자식만큼은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하며 꿈을 펼쳤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두 남녀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대책 없이 시작한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먼저 그들은 방 2개짜리의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부잣집 철없는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그녀는 김밥집을 제안했다. 동네의 중심상가라고 불리는 곳, 1층에 김밥집을 차렸는데 장사는 생각보다 너무 잘됐다.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은 그녀의 김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고, 작지 않던 매장은 식사하는 사람들로 꽉 찼다.
2년 뒤, 가족은 방 네 개짜리, 두 배는 더 큰 아파트로 이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기 김밥집의 강도 높은 노동에 지쳐 있었다. 그와 그녀는 김밥집을 정리하고 ‘세계 맥주’ 가게를 차리기로 했다. 새로 이사한 좋은 아파트 앞에는 첫째 아들이 다닐 초등학교가 5분 거리에 있었고, 둘째 딸이 다닐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유치원이 3분 거리에 있었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은 그녀의 어린 딸이 가장 좋아하는 동요 제목이었다. 어린 딸은 기분이 좋을 때면 항상 이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녀는 그런 딸의 모습을 천사 같다고 표현했다.
“새로 갈 유치원 이름이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너무 좋지?”
그녀는 어린 딸에게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마음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동요 中-
업종을 김밥집에서 맥주 가게로 바꾸며 가족의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그녀는 낮 동안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집안일을 하였고, 저녁이면 가게로 출근해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장사를 했다. 그동안 그는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가게로 출근해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방과 후 어린 두 자식의 간식을 챙겨줄 수 있어서 좋았다. 초등학생 아들의 숙제를 도울 수 있고 유치원생 딸과 인형 놀이를 함께할 수 있는 이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 그녀가 출근할 시간이 되면 “엄마랑 자고 싶어!”라며 매일 칭얼대는 어린 딸의 모습이 그렇게 마음 아팠다고 한다.
그는 항상 주말 아침이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양손에 아이들 손을 꼭 쥐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목마도 태우며 시간을 보내다 오후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 밤 동안 바쁘게 일하고 휴식을 취하는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여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동요 中 2절-
어느 날, 그는 그녀가 술집을 운영하며 다른 이들에게 웃음을 팔았다고 하며 그녀에게 손을 올렸다. 또 하루는 분을 참지 못하고 부엌에서 칼을 꺼내 들며 그녀를 위협하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녀는 그에게 지기 싫었던 것인지, 찌를 수 있을 테면 찔러보라고 소리치며 고개를 쳐들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문 뒤에서 모든 것을 숨어 지켜보던 두 자식은 어쩔 줄 몰랐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녀는 울음소리에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았고 곧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아빠랑 엄마는 싸우는 것이 아니야.”
그는 들었던 칼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마 어린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나갔다. 그 뒤로 딸은 한동안 아빠를 만날 수 없었다. 이후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올라왔다. 그녀는 늙고 약해진 엄마의 품에서 매일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다 하루아침 자식들을 떠났다. 딸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아빠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딸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부모는 단 한 순간도 우리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아빠는 왜 엄마에게 손을 올렸는지, 왜 우는 자식들을 뒤로 하고 집을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았는지.
엄마는 왜 매일 밤 할머니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는지, 왜 엄마의 손길이 절실했던 두 자식을 매몰차게 떠나야 했는지.
나는 이 모든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녀를 향해 손을 올렸지만 차마 더 나아가지 못한 채 공중에 멈춰 파르르 떨던 그의 손을. 그 순간 촉촉하게 젖어있던 그의 눈가를. 어린 두 자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집을 나서던 그의 쓸쓸한 등을. 엄마가 떠난 이후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막막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눈동자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또한 기억한다.
밤새 일하고 돌아오던 그녀의 힘없는 발소리를.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며 쉴 새 없이 들썩였던 그녀의 뒷모습을. 떠나던 밤, 품에 안겨 잠든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던 그녀의 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오빠와 나는 어렸지만, 우리 가족이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누구도 어린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픔과 설움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나 역시 묻지않았다, 사실 묻고 싶었다. 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었는지, 왜 우리는 함께할 수 없는지.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아플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부모의 슬픔 위에 내 슬픔을 얹어 그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침묵 속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냈다.
그렇게 방 네 개짜리 넓은 집의 캄캄한 방 한구석에는 온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을 쓸쓸히 그리워하는 8살짜리 여자아이가 홀로 있었다. 늘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란 동요를 흥얼거렸던, 작은 어깨로 부모의 슬픔까지 떠안으려 했던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