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독서
개권유익(開卷有益), 반부논어(半部論語)
취미를 물어보면 독서라고 한다. 사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특별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독서 시간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취미로 독서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떳떳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책 읽는 것을 즐기고, 당당히 취미라고 얘기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던 시기임에도 독서를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꺼려지던 시기가 두 번 있었다.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자기 계발서였다. 자기 계발서를 정말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어느 순간 현타가 와버렸다. 자기 계발서는 단순히 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내용을 실천하고,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의지가 없었다. 그저 실천 없이 이 자기 계발서, 저 자기 계발서를 계속 뒤적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읽어도 변화가 없는 나의 모습에 현실 자각의 시간을 가지고서는 한동안 책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다양한 교양 지식을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 나는 온갖 분야의 책을 찾아 읽었다. 역사, 철학, 과학 등등. 물론 전문지식수준의 책이 아니라 쉽게 쓰인 교양지식수준의 책들이었다. 역시나 어느 순간 현타가 왔다. 책을 읽어도 읽어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분명 책을 읽었고 부분적으로는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전체적인 내용은 머리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부분적으로 남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 두 시기의 나는 독서를 취미로 여기지 못했다. 인생의 숙제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 옛날 숙제로 깜지를 하며 외웠던 것처럼, 책의 내용들을 그저 머리 한구석 어딘가에 저장하려고만 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당연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따로 없었다. 현실 자각의 시간이 찾아올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드디어 독서를 취미로 여기기 시작했고, 독서를 즐기기 시작했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드디어 누리기 시작했다.
내가 독서를 통해 경험한 이점은 사고의 확장이었다. 나 혼자 백날 살아봐야 얻을 수 없는 경험과 생각의 방식을, 독서를 통해 얻게 되었다. 나만의 세계관이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사고가 유연해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나와 다른 남들에게 관대해짐을 느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머릿속에 담으려 하지 않고, 내 머릿속의 내용물에 책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섞으려 하면서 알게 된 독서의 이점이었다.
물론 독서를 통해 얻는 이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 계발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계발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이점, 마음공부와 관련된 책을 통해 더 단련된 마음을 갖게 되는 이점, 에세이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얻어가는 이점,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을 통해 힐링을 얻어가는 이점, 영화로는 체험하기 힘든 상상력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얻어가는 이점. 이외에도 수많은 이점들이 있고, 이런 이점들을 독서를 통해 얻어가고 있다. 이를 뜻하는 성어가 바로 개권유익(開卷有益)이다.
중국 송나라 제2대 황제 태종은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태종은 어느 날 신하들에게 방대한 규모의 백과전서를 편찬하게 하였다. 신하들은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을 뽑아 천권의 방대한 백과전서를 만들고 당시의 연호를 따서 태평총류(太平總類)라고 이름 지었다. 태평총류의 유용함을 파악한 태종은 이 천권을 매일 3권씩 읽어 1년 내에 독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 태평총류의 이름은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바뀌게 되었다.
송나라는 개국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황제로써 굉장히 바쁜 시기였다. 그럼에도 태종은 피곤을 무릅쓰고 태평어람을 매일 3권씩 읽어나갔다. 결국 황제의 건강을 염려한 신하들이 이를 만류하였다. 그러자 태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에서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가? 책을 펼치면 유익한 점이 많다. 나는 전혀 피로하지 않다."
엄청난 독서광이던 송 태종의 이 말에서 개권유익(開卷有益)의 성어가 나오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유익한 점이 많다. 그렇기에 많은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 체험했듯이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독서법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독서법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잘 맞는 독서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최소 한 번은 좋은 책을 제대로 한 번 읽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뜻하는 성어가 반부논어(半部論語)이다.
송나라의 1대 황제 태조 때부터 송나라를 개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재상의 자리에 오른 조보라는 인물이 있었다. 조보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개권유익(開卷有益)의 주인공이었던 독서광 태종 대에서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이 조보를 시기하던 신하가 태종에게 고하였다.
"조보는 여태껏 읽어본 책이 논어 한 편뿐입니다. 이런 자에게 중책을 맡기기에는 불안함이 큽니다."
태종은 조보를 직접 불러 물어보았다.
"논어 한 편 읽은 것이 전부라고 헐뜯는 자들이 있었소. 그것이 사실이오?"
조보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과거 논어 반 권으로 태조께서 천하를 평정하시는 것을 보필했습니다.
지금은 논어의 나머지 반 권으로 폐하를 도와 천하의 태평을 일구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 줄여서 반부논어(半部論語)의 성어가 나오게 된 일화이다.
송의 태종은 책 읽는 것을 즐겨 1년 만에 천권의 책을 읽었다. 조보는 좋은 책 한 권을 정독함으로써 천하를 평정하고, 천하를 다스렸다. 송 태종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나도 책 읽는 것을 즐기기에, 취미는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조보처럼 정독할 수는 없지만 책의 내용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흡수해가고 있다. 독서를 자기 계발로 여길 때에는 얻을게 많지 않았으나, 취미로 여기면서 많을 것들을 얻어가고 있다. 강박 없이,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