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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Dec 20. 2020

주말의 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월화수목금의 시간이 아무리 길었다 하더라도, 집에서 푹 쉬는 주말의 시간은 순식간이다. 이제 좀 쉬어보나 하고 있는데, 고작 몇 시간 후면 다시 고된 일주일을 시작해야 한다. 분명 주말을 집에서 푹 쉬었음에도 여전히 잠은 부족한 것 같고, 나의 개인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 같고, 피로도 좀 쌓여있는 느낌이다. 나와 같은 회사원들에게 일요일 저녁은 참 힘든 시간이다.


집에서 푹 쉬다가도,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재미있는 영화, 드라마 한 편을 보다가도 내일 출근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달콤한 주말을 누리다가 다음날 출근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곧 지구 종말이 다가오는 가운데 최후의 휴식을 취하는 느낌을 준다. 그럼 조급한 마음이 든다. 종말이 오기 전에 최대한 잘 쉬어야 하는데, 내일 출근 걱정에 마음은 심란해진다. 시간은 또 훅훅 지나간다.


마음이 심란하든 어쩌든 결국 내일은 온다. 내일의 출근 때문에 괴롭고 불안해하느니, 남아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유익하게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다음날 출근이니 일찍 자는 것이지만, 그 시간이 아까워 이것저것 하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후회한 적도 여러 번이다. 어찌 되었든 출근에 대한 불안을 접어두고 지금 당장의 이 휴식시간을 즐겨야 한다. 스피노자가 했다고 알려진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 스피노자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만이 스피노자가 한 말로 잘 못 알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잘못된 인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노자가 한 말로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의 머릿속에 쉽게 각인될 만큼 멋진 말이라, 잘못된 사실임에도 금방 퍼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주인공을 16세기에 활동했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로 인지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말 중 가장 유명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의 그 어떤 저서를 찾아봐도 이 문장을 찾을 수 없으며, 이 말의 출처로 알려진 마르틴 루터의 일기장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유럽에서는 왜 마르틴 루터가 이 말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었을까.


1934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독일은 나치 체제로 히틀러의 독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히틀러는 교회들을 친나치 교회로 통합, 재편하려 했는데, 이런 히틀러에 저항하기 위해 신학자들은 '고백교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고백교회에 속했던 칼 로츠라는 목사가 1944년 쓴 목회 신문의 기고문에서 이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루터의 말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1944년 10월 5일, 목사 칼 로츠"


칼 로츠 목사가 이 문장을 왜 루터의 말이라고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치의 억압 속에서 이 문장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 같다. 이후로 전 유럽 사람들이 이 말을 마르틴 루터의 말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2차 세계 대전까지 겹친 암울한 시기, 나치의 억압에 저항하고 있던 이들에게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라는 이 말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이 말의 주인공은 스피노자도 아니고, 마르틴 루터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속담이 유래를 알 수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듯, 이 유명한 말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을 누가 했느냐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말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듯하다.


'내일 비록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그 운명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품은 채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비록 내일이면 출근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쳐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남은 주말을 열심히 보내야 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일은 종말이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내 할 일이나 하자.'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일 출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그냥 남은 주말을 하던 거나 마저 하면서 푹 쉬면 된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인가. 어차피 정해진 운명, 신경 쓰지 말고 내 할 일이나 할 것인가.

뭐가 되었든 지금 당장 할 일은 똑같다. 머리를 비우고 푹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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