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요 근래 유독 지인들 친인척 관계의 장례식이 많았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기에 가슴 깊숙이 우러나오는 슬픔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소식을 접할 때는 지인 걱정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좀 하다 보니 경험상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사람들의 태도는, 생각보다 그 이전과 다른 것이 별로 없다. 내 입장에서 가까운 친인척을 떠나보내고 온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나와 내 지인들의 나이 때에서, 나이 많이 드신 조부모와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많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나보다 나이 어린 후배가 아버지를 떠나보냈을 때 장례식에서 본 후배는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본 적 없는 낙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제를 떠나보낸 또 다른 후배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망연자실했다.
그들이 돌아오면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평소처럼 대해주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알게 모르게 내 태도에서 동정과 같은 것이 들어가면 어떡하지 걱정되었다. 그렇게 고민과 걱정을 했지만 막상 돌아온 이들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들을 평소처럼 대하고 있었다. 이후에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친구들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럼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다고.
지금 내 나이 때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을 겪는다는 것은 꽤나 힘들 것이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독 그런 경우를 몇 번 보아왔고,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그 심정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 해도 내심은 이전과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티를 내지 않을 뿐.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상황은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뉴스만 봐도 안타까운 소식이 하루 한 건 이상 보일 정도이니, 뉴스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은 얼마나 많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쉽사리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나의 죽음이다. 죽을병에 걸려있지 않는 한 나의 죽음은 쉽게 상상하기가 힘들다. 죽음을 상상해봐도 쉽사리 체감되지 않는다. 다만 막연히 생각할 뿐인데 그 생각도 여러 가지이다. 죽음 뒤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으니 굳이 생각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죽은 뒤의 나에 대한 이미지, 예를 들어 명예나 평판과 같은 것들을 신경 쓸 수도 있다. 부모님 혹은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남길 것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가 한 말이다. 미국의 작가, 미치 앨봄이 자신의 스승, 모리 교수와의 대화를 녹음하여 쓴 책이다. 모리 교수는 루게릭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20년 만에 모리 교수를 찾아간 제자, 미치 앨봄은 매주 화요일마다 모리 교수를 만나며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통해 마지막 논문을 작성한다. 그 논문이 바로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다.
만약 내가 죽음 이후 걱정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죽음 이후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게 되면, 내 인생의 초점이 바뀐다.
"죽게 되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아무도 믿질 않는단 말이야. 만약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텐데."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벗겨 내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모든 일들이 아주 다르게 보인다네."
그렇다면 모리 교수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면서 맞춘 초점은 무엇일까. 모리 교수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모리 교수는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듯하다.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과 모든 기억이 거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겠지.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에 있는 동안에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이야."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
그래서 모리 교수는 관계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한다. 제자인 미치 앨봄과 얘기하는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주의를 자신의 제자에게 쏟아 붙는다.
"나는 다른 사람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건 상대방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처럼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네. 지난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지. 코펠과 인터뷰를 할 일이나 먹어야 하는 약에 대해서도 생각하질 않아.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
이 책은 모리 교수의 장례식과 모리 교수를 그리워하는 작가의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전 세계 1700만 부가 판매되어 명실상부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책인 만큼 나에게도 최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이별과 맞물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다. '나의 죽음'이란 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지향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많이 불필요해지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더 생각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죽음'에 대해.
언젠가는 외면을 멈추고 내 인생의 진짜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깨닫는 날이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