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상순 Jun 26. 2024

아무튼, 수영

-다이빙 못해서 환장한 사람이 수영으로 대리만족하는 이야기

집에서 차로 십 분 거리에 수영장이 생겼다. 건물은 번지르르하게 지어 놓고 영 개장할 생각을 안 해서 지역에 흔하디 흔한 미분양 건물이 또 하나 생기나 보다, 거지반 포기할 즈음이었다. 임시 개장일 당일, 태극권 수련을 마치자마자 수영복 가방을 들고 풀장으로 향했다. 슈트와 핀, 마스크와 스노클 없이 수영복 가방만 달랑 들고 가자니 무지하게 어색했지만 안 그런 척했다. 임시 개장인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입수'가 목표인 나로선 분위기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다이빙은 하지만 수영은 할 줄 모른다. 뭔 말이냐고? 프리다이빙은 수영이 필수인 종목이 아니다. "수영은 못해도 가능합니다." 이 문장이 프리다이빙 강사들이 모객을 위해 구사하는 흔하디 흔한 문장이다. 물론 물에 뜰 줄은 안다. 잠수도 한다. 개헤엄도 한다. 개구리헤엄도 좀 한다. 하지만 자유형 못 한다. 게다가 발이 안 닿는 곳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그런 내가 5미터 이상의 수심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겠노라 마음을 먹었으니 기이하고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월에 수심 타다 귀를 다쳤고 두 달은 쉬라는 진단을 받았다. 두 달 동안 수심을 타지 말라, 즉 이퀄라이징을 하지 말라는 당부이니 수영은 괜찮겠다 싶었다. 의사도 수영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 참에 수영을 해 보자.' 도전의식이 솟구쳤다. 보홀에 있는 프리다이빙 센터 교육 내용을 살펴본 적이 있다. '200미터 수영 능력'이 필수로 되어 있기에 포기했다. 보통은 수영 못해도 프리다이버로 쳐 준다. 그런데 200미터 정도 헤엄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니 어쩐지 불완전 혹은 불안전한 다이버의 정체성이 강제로 확인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땐 수영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수영장, 이것이 수영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5월 말 임시 개장부터 6월 말인 지금까지 일요일을 빼고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 입장 첫날, 핀도 없이, 슈트도 없이 문자 그대로 물속에서 몸부림치던 나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수영 강사 중 한 명이었는데, 킥판을 들고 다가와서는 "수영 못하시죠? 이거 잡고 발차기 연습부터 하세요."라고 조언했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몸부림을 치던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그에게도 킥판이 주어졌다. 


프리다이빙을 할 때도 발차기가 문제였다. 롱핀의 글라이딩을 이용하는 방법도 아주 늦게 터득했다. 수영인들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인 다리의 내전이라든가 엄지발가락을 붙여 발모양을 삼각형으로 만든다든가 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새로 배우는 언어만큼이나 낯설었다. (프리다이빙할 때 이런 건 안 가르쳐 준다.) 하지만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몸이 받아들인 물에 대한 '감' 덕분에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특히 발을 찰 때 허벅지를 사용하라는데 발목엔 힘을 빼라고 하고, 발을 뻗지만 순간 구부려 주라는 등 유튜브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부추겼다. 50미터를 8번 왕복하라는데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었다. 일단 다리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킥판을 잡고 정면 호흡을 하면서 발을 차는 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양질 전환의 법칙을 여전히 믿는 나로선 무모하고 무식하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할 때는 아무래도 상체가 수면 위로 나오기 때문에 하체가 가라앉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서 킥판 없이 무호흡 발차기를 반복했다. 숨이 차면 멈췄다가 다시 발을 찼다. 그러던 어느 날, 허벅지가 손잡이가 되어 낭창낭창 채찍을 휘두르는 그 감이 오고야 말았다. 


지금도 킥판을 잡고 호흡하는 발차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호흡을 하기 위해 수면 위로 고개를 들 때 가라앉는 다리를 끌어올리느라 잔뜩 들어갔던 힘은 좀 빠졌다. 틈틈이 사이드킥을 연습했고 엊그제부터 측면호흡을 시작했다. 정면호흡보다 측면호흡이 더 편안하다. 힘을 빼고 리듬을 탄다. 프리다이빙 역시 그렇다.


혼자서 한 달을 고군분투한 끝에 여기까지 왔다. 가끔은 수영장에 너무 가기 싫었지만 너무 가고 싶었다. (이 심정 알 거다) 한 달 동안 수영에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어서 기쁘다. 궁금해지면 게임 오번데, 수영이 자꾸 궁금해져서 큰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 빼놓고 재미나게 놀까 봐 쓰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