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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Jul 01. 2024

수영일기

1. 쉰넷, 수영을 시작하다

새삥 수영장에서 한 달을 버텼다. 롱핀과 스노클과 슈트 없이 맨몸(오해는 금물이다. 입을 것을 입었다)과 맨발로 25미터 풀장을 (거짓말 좀 보태서) 종횡무진했다. 슈트를 입고 핀을 신고 스노클을 물었을 때 나는 무호흡으로 78미터를 주파했다. 프리다이빙 얘기고 다이내믹 압니아라는 종목 얘기다. 깊은숨 한 번으로 78미터를 갈 수 있었는데 수영이란 것은 숨을 쉬는데도 25미터를 가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숨을 참고 발차기를 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내가 프리다이빙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강사가 말했듯, '프리다이빙은 숨 참고 하는 운동이고, 수영은 숨 쉬라고 하는 운동' 아니더냐. 숨을 쉴 일이다.


한 달 동안 다양한 수영 유튜버들과 친구 먹었다. (기분 탓이다) 킥판 잡고 음파 발차기에서 고전했지만 숱한 동영상을 섭렵하며 킥판 잡고 측면호흡 단계까지 왔다. 수영강습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수영장 가오픈 첫날 수영 할 줄 모르는 몸으로 수영장에서 몸부림친 탓에 제대로 강사에게 눈도장을 찍혔다. 그 후로 강사는 "고개 들지 마세요. 그럼 하체가 가라앉아요." "팔 돌릴 때 팔 뒤집지 마세요. 그대로 돌리세요." 등등 여전히 물속에서 몸부림, 물부림 치고 있는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나리질은 사절이고 오지라퍼는 사양이지만 수심 18미터 들어가다가 고막이 터져 버린 나는, 석 달간 프리다이빙을 쉬기로 한 나는, (이제 한 달 남았다) 쉬는 동안 수영을 배우기로 한 나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강사의 말 한마디는 고나리질도 오지랖도 아니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꿀팁이었다.


강습 없이 동영상으로 쭈욱 수영 독학을 할 생각도 없지 않았다. 강습반에 들어가 호구조사 당하기도 싫고, 연습 시간에 괜히 수다 떠는 것도 싫고, 불필요한 관계를 맺는 것도 싫었다. (예스. 아임 베리 까칠) 샤워실에서 고수로 보이는 한 분 말씀하시길, "이제 반장도 뽑고, 만원씩 회비도 내고 그래야지." 반장은 왜 뽑고 만원은 왜 내나. 인터넷 수영 카페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보다 강습은 절대 받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 


결국 강습을 신청했다. 몸부림 물부림 덕분에 제대로 강사에게 눈도장이 찍힌 처지니, 어차피 강사의 레이다망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첫 강습이 있던 오늘 강사는 수영 경험을 수강생들에게 묻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측면 호흡까지 마치셨죠?" 역시 지켜보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강습을 신청한 결정적 이유는 자세 때문이었다. 운동은 자세가 전부라고 여기는 편이다. 프리다이빙 할 때도 덕다이빙 연습하느라 삼 개월 동안 1시간 반이 걸리는 풀장에 일주일에 두 번씩 다녔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한 덕에 이제 제법 우아한 오리가 되어 물속으로 '퐁당' 들어갈 수 있다. 그때도 강사의 힘이 컸다. 수영을 배울 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초반 첫날, 발차기와 음파 호흡법을 배웠다. 20명 수강생 중에 절반이 결석을 했다. 현재 스코어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영'한 것 같다. 오십 사 세가 어디서 제일 '영'하기 쉽지 않다. 영광이다. 강사는 서둘러 진도를 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한 달 만에 자유형, 배영을 마스터하는 반도 있던데 그런 호흡은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좋다. 태극권을 진도 빼는데 주력하지 않고 '낱낱이'복습하기로 한 것처럼 수영 역시 낱낱이, 하나하나 기초를 다질 생각이다. 물론 '자수' (줄임말 쓰니까 정말 스위머가 된 것 같다) 땐 측면호흡에 매진할 테지만. 산에 너무 오래 살았다. 남은 인생은 바다 가까이에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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