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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y 22.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6

그리운 건 그리운 대로

어제 올해 첫 콩국수를 먹었다. 엄마가 부지런히 콩껍질을 깐 덕분이다. 메주콩을 한나절 불린다. 날이 더워 반나절 만에 콩은 제법 몸을 불렸다. 콩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냄비 뚜껑을 덮은 채로 끓인다. 딴짓은 금물이다. 콩물이 홀라당 넘쳐 오르면 레인지가 더러워지는 건 물론이고 고소한 콩맛도 사라져 버린다.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줄이고 뜸 들이듯 조금 더 익힌다. 5~10분 후에 불을 끄고 한나절 그대로 둔다. 다음날 소금 간을 하면서 믹서에 곱게 간다. 콩 삶은 물은 버리지 않고 콩을 갈 때 쓴다. 콩국수 끓여 먹고 남은 콩물은 오늘 엄마의 아침 식탁에 올랐다. 식은 밥에 콩물과 맹물을 반반씩 섞고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준다.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밥알이 퍼질 때까지 가끔씩 저으면서 살핀다.


엄마는 오늘 꽤 늦게까지 잤다. 고사리를 널어 말리고 마당일을 얼추 마무리하고 들어오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방이 아닌 큰딸 방에서 자고 있는 걸 보니 아침에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모양이다. 엄마가 자꾸 큰딸 방에 눕는 이유가 있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늘 큰딸이 지금 쓰고 있는 그 방에서 살았다. 엄마의 기억은 엄마의 몸을 더 익숙한 곳으로 이끌고 엄마는 그에 저항하지 않는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매우 늦은 아침)을 먹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제자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냐고. 엄마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런 거 애써 기억해 내지 않겠다'라고 단언한다. 그 기세가 훌륭하다. 나도 엄마의 결단을 환영한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이렇게 한마디 보탠다. 복도에서 울고 있는 애가 있었다고, 왜 우냐고 물으면 '선생님~'하면서 더 울었었다고.


"그 시절이 그립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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