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살기 프로젝트
"페미니즘 한다고, 성폭력 뿌리부터 절단내버리겠다고 그렇게 (싸)돌아다니더니 결국, 제 몸이 상했네."
"비건으로 그렇게 단속하며 살더니 두통오고, 마비오고, 영양부족으로 탈진까지 했네."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로부터 비슷한 메시지조차 들어본 적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일련의 행동이 위와 같은 말들로 정리될까봐, 페미니즘과 비건에 누를 끼칠까봐(웃긴다) 쫄았더랬다.
맥이 떨어진 손목과 발목에 침을 꽂고 누웠을 때도, 오늘 (환우동우회 결성을 타진하던) 동네 언니와 마주 앉았을 때도, 입원실에 누워 반쪽짜리 창문으로 하늘을 마주할 때도 나는 시종일관 '막막하다'고 되뇌었다. 그 '막막'의 이유에는 알고보니 정말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강력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아픈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야' 혹은 '어떻게 해도 안될 거야.'라는 답변 외에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그저 막막하다,라고 되뇌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종의 풍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도 "일은 계속할 수 있나요?"라는 형편없는 질문을 할밖에.
결국 이런 생각들은 아픈 몸에 대한 내 사유의 천박함을 증명한다.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몸에 대한 부정, 효율성을 담보할 수 없는 몸에 대한 폄하, 아프고 쇠약해진 몸은 다른 단계 그러니까 더 나아지는 단계로 '나아가야만'한다는 정언명령. 오늘 쉬면 내일은 걸을 수 있고, 모레는 달릴 수 있으리라는 속도감과 공간감에 대한 응답 등. 이미 6년 전 고사리를 끊고 뱀사골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땄을 때, 이 맥주를 마시고 샤워를 하면, 아니 맥주를 마시고 샤워를 해도 이 묵지근한 몸의 시간성은 삭제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대가로 나이를 먹고 노쇠해지는 것임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그 순간의 알아차림이었음을 이제 또 새롭게 안다.
왼쪽 귀와 턱 선을 따라 만들어지는 마비감엔 이제 마비감이 없는 날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 사이 또 새로운 마비감들이 몸 이쪽 저쪽을 관통하기도 하는데, 잘 들여다보면 그 통증이 오는 길이 보일 것도 같다. 나아지고 없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통증은 아마 내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비건으로 사는 나는 어쩌면 누구 말대로 늘 화를 내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가리고 고르고 빼고 없애는 그 과정은 상쾌하지만 늘 상쾌하지만은 않은 삶이기도 하다. 먹는 일은 가끔은 취미이고 취향이며 즐거움인데, 나는 그 먹는 행위에 정치적 행위'만'을 담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긴장감과 단호함과 엄격함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 삼종세트인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99년에 처음 시작한 비건 생활은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더 단호해지기도 하고 더 느슨해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강경함을 떨쳐낼 수 없는 정치적 행위였다. 요즘은 방바닥 밑으로 쳐박힐 것 같은 탈진상태를 막기 위해 계란을 아주 가끔 먹는다. 뭔가 수용해야 할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그 첫번째가 아픈 내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픈 내 몸을 부족한 무엇으로 상정하고 더 나아질 것만을 기대하는 불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겠지만, 아픈 내 몸을 수용하는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알겠다. 그래서, 일주일 후에도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나를, 한달 후에도 뚝방길을 뛸 수 없는 나를, 둘레길을 날다람쥐처럼 달릴 수 없는 나를 채근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이 통증이 내일도 내 몸에 머물 것이라는 사실 그것만은 알겠다.
그래서 지금 내게 가장 절박한 서사들을 모아보려고 한다. 나는 재미주의자라서, 이 기회를 그냥 절대 포기 못한다. 재미있게 아픈 몸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