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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Sep 22.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10. 처음을 돌아보기

다이빙 시작한 지 두 달이 가까워 오니 심장 박동 나대기 증후군은 많이 사라졌다. 장비를 차에 실을 때부터 5미터 수심과 함께 연동되던 것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다.  파란 풀장을 떠올리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얼른 수심으로 들어가 숨을 참고 파란 고요를 맛보고 싶다.


오늘, 같은 시간 풀장에 입장한 다이버는 총 15명이었다. 두 달 동안 최대 인원이었다. 1 레벨 교육생이 7명이었고 나머지는 2 레벨로 올라가고자 트레이닝을 하러 오신 다이버들이었다.  여느 때처럼 레벨에 맞춰 두 명씩 짝을 지었다. 나의 버디는 몰차노브 트레이닝을 하고 계신 레벨 1 다이버였다. 몰차노브 트레이닝이 무엇인지 여쭸다. 일명 빡트(빡센 트레이닝)란다. 평가관님이 나의 버디에게 "왜 회식 날짜 안 잡아?"라고 인사하는 모습을 봤다. 빡트에 솔깃했으나 회식이라니 마음이 식었다.


"다이버분들은 다이빙 후에 무엇을 드시나요? 참고로 저는 채식인입니다."


지지난 주 후기 게시판에 이런 질문을 올렸더랬다. 나는 잊지 않았다. 내가 '물뽕' 1단계라는 사실을. 다이버 분들과 조금 더 편해지면 이 다이빙 카페에서 '물뽕'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묻고 이야기 나누고자 한 처음의 결심을 잊지 않았다. 풀장 모임에서 다이버들은 "레벨 1입니다.", "강사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 "저는 물뽕 1단계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다이버는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물뽕이라는 말에 이미 무감각해졌다. 그래서 정성스레 기억해내야 한다. 물뽕이라는 말을 감수하면서 이 카페에 입성한 이유를. 버디를 이루는 다이버들은 서로의 안전을 살피며 기량을 높이는데 애쓰고 강사들 또한 헌신적이고 사려 깊다. 무엇보다 물뽕을 기억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엔 다이빙 자체가 너무 재밌다. 더 깊은 수심에 가려면 수도권으로 가야 하고 장시간 동일한 차량 안에서 견뎌야 한다. 당연히 밥도 같이 먹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물뽕 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나의 식사 유형이다. 3주 전인가 최고참 강사와 빡트를 마쳤을 때 일이다. 핀을 벗고 슈트를 정리하던 내게 강사가 말했다. "그냥 가세요?" 뭐가 더 남았나, 혼자 머리를 굴리다가 어색하게 자리를 떴다. 탈의실을 빠져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그때 비로소 알았다. '그냥 가세요?'가 '회식하고 가세요'의 동의어란 걸.


"다이빙 후 무엇을 드시나요?"라는 질문에 적잖은 댓글이 달렸다. 비건이나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일부러 삼가고 '채식인'이라는 말을 썼지만 댓글의 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닭가슴살이요.", "고기죠, 고기", "촤악촤악 고기를 굽습니다." 등등의 댓글이 주저 없이 달렸다. "고기라고 쓰려고 했는데 채식하신다니 콩고기라고 쓸까요?"가 제일 순한 맛 댓글이었다.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낙담하지 않은 건 아니다. 배려받지 못했다는 생각도 짧은 순간이나마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배려받아야 하는 건 육식을 하지 않는 나의 식사유형이 아니다. 지금도 순전히 먹기 위해 도살되고 있는 소이며 돼지이고 닭이다.  나조차 이 지점을 자주 혼동한다. 혼동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오싹해진다.


프리다이빙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라 들었다. 그래서 명상이나 요가를 전문적으로 병행하는 다이버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P강사는 대회 사흘 전부터 폐의 쓰임새를 활성화하기 위해 위를 줄이는, 그러니까 단식하는 다이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열어 준 제주의 D강사는 내가 비건이라는 걸 알고 채식하는 다이버들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내가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이유 역시 상승이 아닌 하강을 통한 고요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고요를 위해 습득해야 할 기술이 아직 많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타협해야 할 순간 역시 적지 않다. 그런데 요즘 '다이빙 카페 가입하시지 말고 그냥 제주로 오세요.'라던 나의 첫 버디 D강사의 권유가 자주 메아리친다. 개방수역에서 다이빙을 하게 된다면 도모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예술은 기술 없이 불가능하고 탁월함은 훈련을 통해 드러나지만 나는, '내가 왜 이것을 원했는지' 또한 잊지 않고 싶다.


10월 중에 제주에 갈 날짜를 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은 자꾸 서귀포를 향해 달음박질친다.  나는 고요를 만끽하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 방법은 또 여러 갈래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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