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8화 행복이 뭐 별거 있나
근교에 있던 친구가
사는 동네로 나를 보러 왔다.
그 친구랑은 술도 안 먹고
밥이나 카페,
일상생활을 이야기하는데
만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했다.
밥을 먹고 필요한 게
있다면서 이마트로 향했다.
친구는 사야 할 것을 보고 있고
뒤편에 있는 위스키에
한눈이 팔렸는데
술을 멀리하고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보고 있으라며
말없이
코너 끝에서 기다려주는데
그 모습에 마음이 말랑해져서
친구를 보자마자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여러 음식 소스들을 보고
필요한 것만 사고 나오는데
노을빛으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보다가 절로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느끼지 못한 평화로움,
일상에 대한 불안 없는 행복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커피도 마시고
엄마랑도 장을 보러 많이
마트에 또는 오일장에 갔었지만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기가 빨렸었는데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자체가 행복이구나 했다.
집 가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져서
온기가 채워졌다.
행복은 사소했다.
행복은 늘 혼자 있는 순간이었다.
혼자서 맛있는 밥을 먹거나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 자체로도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누구와 있을 때,
물론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행복하지만
불안도 같이 느꼈다.
이 부정적인 생각 하나도 없이
내 입에서 행복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이상했다.
언제부터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감정을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건지,
무덤덤해졌다.
그다지
사람에게서 기대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되어버린지는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동갑내기 짝사랑의 끝으로
더 무덤덤해졌다.
20살 초반에 행복에 집착했었다.
행복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아픔이 없는
유토피아 같은 단어였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아무런 자아의 방향도
잡을 수 없는
무지인 상태였으니,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유토피아라고 말하는
그 행복을 잡고 싶었다.
물론,
취미생활을 하면서 나오는
행복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서 나오는 그 행복,
늘 연애를 하고 싶었는데,
두려웠다.
예측할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까,
행복의 반대어는 불행이듯이
상대가 나에게 실망을 해서
변하는 마음이라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불행이었다.
지금은 기대도 낮고
무덤덤해서
상대의 변하는 마음 또한
‘내가 어떻게 하리’ 하면서
받아들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무덤덤해지고 싶은 나였는데,
어느새 무덤덤해진 지금은,
그 풋풋한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껴보고 싶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