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과 꿈의 관계 2-3

17화

by 무유

그로부터 6년이 지나고 26살 때이었다.

노곤노곤, 점심을 달게 먹고

낮잠에 빠져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자이언츠 사직 구장 앞이었던 거 같다.

야구를 보려고 지나가고 있는데

광장 같은 시멘트바닥에

사람들이 원형을 이루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재미있는 일이 생겼나? 하고


호기심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중심에서

한 남자가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앉으며

사람들의 비웃음속에서

본인 일을 열중했다.

본인일이라고 해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일이었다.

사람들 속에서 묻혀 같이 비웃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웃음을 넘어서

바보라고 놀려댔다.

시멘트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얀 얼굴에

누가 봐도 호감이 가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희고 흰 피부에

희고 흰 옷을 입고

살짝이 곱슬끼가 있는 헤어스타일에

양말도 신발도 안 신은 맨발에

재미있다는 얼굴로 열중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같이 비웃다가

그 사람이 짠하고 안쓰러워졌다.


순간 화가 났다.


원래 같으면

사람이 많은 속에서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꿈이라서 그런가,


나와 키가 비슷한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팔을 잡았다.


“사람들이 바보라잖아, 그만해”


그 남자는 팔을 잡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화였는지 모르겠다.


창피함이었는지,

한심스러움이었는지


이유 모를 화가 났다.

그에게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사람들이 바보라잖아!”


그 남자는 그때서야 반응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무유야, 내가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잖아, 내가 좋은 걸!”


그 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이


“으아아아아아”


꿈에서부터 소리 지르며 깼다.


너무나 생생했다.

눈을 뜨니 바로 보이는 곳은

사직야구장이 아닌 방의 천장이었다.

현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고

무슨 꿈이 이래?이었다.


그때의 26살에는 공무원 열풍이 최고조였다.

취미였던 야구도 끊고

아무도 만나지도 않고

세상과 단절한 채

세종시공무원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공무원은 원하던 직업이 아니었다.

사촌 언니, 오빠들은 공부에 일가견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자는 시간 빼고는

학원과 학업뿐이었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좋은 대학교에 졸업하기 전에

공무원 합격증과 대기업 입사, 탄탄대로였다.

엄마도 내가 공무원이 되었으면 했다.

엄마에게 글을 쓰는 작가의 꿈은

들리지도 않았다.

고집이 세긴 해도


항상

끝은

엄마의 말을 따랐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너무나 충격이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잘생긴 꿈속아이를 생각했다.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생긴 처음 보는 아이였다.


그런데 처음 봤지만 너무나 친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낯설지가 않았다.

익숙했다.

기시감이었다.


‘혹시… 나야?’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했던 말이,

사실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글을 쓰는 건 대단하지 않아도

단지, 좋아하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쓰는 거라고

그렇게 해석했다.


주변을 돌아봤는데

방에는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해놓고

쓰고 싶은 이야기 소재를

소중하게 모셔두면서 공책 2권이 넘도록

기록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도록

당연하게도 하고 있던 행동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 순간 스스로가 부끄럽지가 않았다.

글을 쓴다고 해서

남들이 비웃더라도 아무렇지 않다고,


이제는 엄마가 정해준 시나리오가 아닌

스스로 원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다른 시선 따위가 부끄럽지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부터 지원했다.






모태솔로 에세이를 쓰면서

다음 얘기는 어떻게 써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지?

초창기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

자고 다음날이면 잊어버려서

떠오를 때까지 일상을 보내다가

26살의 그 꿈이 생각이 났고

첫사랑 오빠의 청청패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가만 보니 닮아있었다.

꿈과 짝사랑은 원하는 나와 닮아있었다.

그동안 스스로 외면하고 감췄던

무언가 되고 싶은 나를,

첫사랑 오빠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첫사랑이 준 영향력이 이렇게나 큰 거를 보면은

1년의 저주도 어찌 보면

숨겨진 나와 첫사랑과

어떠한 이유로 연관이 되어있을 텐데,

아직 찾지 못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사실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나서야,

첫사랑을 떠올리면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남들이 비웃을 만한 청청 패션을

입고도 당당했던 모습.

망설이지 않고 자기 길을 걷는 사람.


꿈속의 남자,

나의 자아도 그랬다.

남들의 비웃음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던 그 모습.


어쩌면 나는 늘 그런 사람을 동경해 왔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짝사랑이라는 감정도,


꿈이라는 은유도


결국은 내가 되고 싶은

나의 얼굴이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싶다.

나만의 시나리오를 쓰듯이.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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