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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Oct 03. 2021

첼로 선생님? 아니, 친구.

독일에서 배운 조기 음악교육: 퍼실리테이터로서의 교사

오늘 하늘은 화려한 하늘이 아니어도 잔잔히 잦아드는 노을이 따스했다.

첼로를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 늘 그 시간 즈음에는 차창으로 노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일주일에 두 번 품앗이 교육으로 첼로 수업을 한다. 시간이 너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찌어찌 계속 잘 이어가고 있다.


손을 다치고 관현악과 첼로 전공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때, 교수님이 학교 내 다른 전공을 권하셨었다.

Musikalische Früherziehung, 조기 음악교육.

처음에는 '조기교육'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심했는데, 독일의 Musikalische Früherziehung은 많이 달랐다.


수업 참관에 들어간 첫날, 음악 교사는 아이들에게 심장에 손을 얹으라고 하고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은 후 자신의 심장소리를 따라 조용히 방 안을 걷게 했다.


저건 뭘 하는 걸까?
왜 갑자기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거지?


체육시간도 아닌데 큰 방안을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템포를 찾았을 때쯤, 그 걸음이, 속도가 바로 '박자'라는 거라고 말을 하는 선생님의 눈빛이 따뜻했다.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손을 맞아가며 배우던 한국식 음악 교육이 아닌 아이들 모두가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박자를 익히는 음악 교육이 얼마나 놀랍던지.


'음악의 3요소'에 대해 용어 정리 없이 온몸으로 배운 다음 날에는 각자 흥미를 가진 악기가 있는 방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활을 잡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가르치고, 허리를 펴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히는 방식을 생각한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첼로를 '가지고' 놀았다. 첼로의 앞 판, 뒷 판을 타악기처럼 쳐보게 하고, 주먹을 쥐고 아무 데나 그어보게 하고. 음악을, 악기를 온몸으로 탐색하게 하는 방식의 조기 음악교육.



독일에서 가져온 첼로 악보


그때 배운 것들, 가져온 악보들이 지금 다시 쓰인다. 곰돌이 가족의 스토리로 시작하는, 과연 악보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의심이 가는 악보에서는 계속 페이지를 넘겨도 나오지 않는 소위 '콩나물'을 첫 권 맨 끝에서야 만날 수 있다.


돌아보니 그 시기에 교사는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참 많이 배웠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교사.. 책 마저 '교육' 보다는 '독려'를 하는 것처럼 쓰여 있는 독일의 교재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이미 내 몸 안에 있는 것들로 음악을 설명해주고, 어려운 자세부터 출발하기보다는 친숙하고 익숙한 자세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점 더 내게 가장 '편한 자세'를 찾게 해주는 교육.

(바른 자세를 하라고 허리를 맞고, 손 등을 맞았던 시간이여..!)


혹 내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시 우리 학교에 가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도망 다니느라, 억지로 마치느라 시간을 때웠던 음대에서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 이제라도 배운 것들을 곱씹어 꼬마 친구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지금 만나 시간을 함께 하는 제자들이 잔잔히 첼로를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첼로 선생님을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라 즐거운 친구로 여겨주기를 바란다.


꼬마 친구들 덕분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첼로를 잡은 지 몇 달째. 덕분에 손이 다시 조금씩 돌아간다.

굳은살이 다시 자리를 잡아간다. 활 쓰는 게 조금 더 편해지고, 소리도 조금씩 더 풍성해진다.

다시 예술가로 온전히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한 때의 예술가로서,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로서 잘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매일매일 주어진 역할에 감사하며 그렇게 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날도 오겠지. 조심스레 꿈을 다시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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