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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Sep 28. 2021

딸냄, 배가아플 땐 맥주를 마셔!

연주자 아빠가 연주자 딸에게

한참 연주를 많이 하고 다닐 때, 공연을 마치면 배가 아팠다.

전혀 무대에서 떨지 않았고, 연습은 싫었지만 무대에 서는 것은 참 행복했는데, 연주를 끝내고 나면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어느 날 연주를 마치고 아빠와 통화를 하면서 이런 날이면 늘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하하하 웃더니, 나를 닮았구나!라고 하셨다.

아빠도 연주를 마치고 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딸냄, 배가 아플 땐 맥주를 마셔!


공연 때마다 왜 그렇게 호프집으로 달려가시나 했더니, 배 아픈 걸 달래기 위해서였나 보다. 아빠는 우리가 이런 날 배가 아픈 이유는 무대에서 떨지 않아도 몸이 긴장을 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긴장이 연주를 마치면 풀려버려서 배가 아픈 거라고.

그 통화를 하기 얼마 전부터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아빠가 주신 꿀팁대로 해보지는 못했지만, 아빠랑 나랑 닮은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힘이 났다. 아빠랑 배 아픈 게 닮았다고 해서 아빠의 실력이 내 것이라는 뜻은 아닌데도 왠지 아빠 딸이라는 사실이 첨으로 으쓱했다.

늘 어깨를 짓누르던 '첼리스트 00 딸'.

나만 무대를 잘하고 싶어서 긴장하는 게 아니었구나. 아빠도 그렇구나.


요즘 새롭게 기획하게 된 몇 가지 일들을 진행하면서 배가 좀 아프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과, 무대에서 내려온 후의 배아픔의 중간쯤 되는 그런 느낌이 며칠 계속되고 있다.

배가 아픈 날의 연주는 괜찮았다. 적당히 긴장하면서 최선을 다한 날의 연주.

이번 일, 잘하고 싶은가 보다. 배가 아픈걸 보니!

맥주를 마시지는 못하지만, 오늘은 사랑하는 페퍼민트 티를 마셔야겠다.


새로이 시작한 일들을 통해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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