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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Nov 29. 2021

연주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으며

벌써 이틀 앞이라니.

내일은 하루 종일 강의가 있는 날이어서 연습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다.

첼로를 닦고, 활을 조이고, 연습을 하면서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어느새 많이 굳어버린 손은 예전처럼 날쌔게,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쌓이며 안되던 것들이 다시 되기 시작하니 전율이 인다.


전공을 할 때에는 도약 연습이 그렇게도 싫었다.

가장 높은 A 현에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지판 위로 옥타브를 올리는 연습.

딱 한 번에 착지가 되면 좋으련만, 도약을 할 때 조금만 삐끗하면 간발의 차로 음이 틀어져버린다.

시험을 위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도약 연습을 할 때는 그렇게 싫더니,

이번 연주를 위해 연습을 할 때는 희한하게도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는(자꾸만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참 멋진 분의 반주를 맡았다.

보컬과 듀엣처럼 노래하는 부분의 클라이맥스에서 옥타브 도약이 있는데, 나를 위한 연습이 아니라 그분의 연주를 망치고 싶지 않은, 빛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연습을 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긴장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을 움직이게 되고, 이전에는 되지 않던 음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데리다는 무조건적 환대를 말한다.

그의 주장에 대한 수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무조건적 환대를 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날 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환대를 한 후 신뢰가 깨지기도 하고, 실망하게도 되고, 뒤통수를 맞기도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누군가에게 나의 무조건적 환대가 통하고, 기쁨을 느끼고, 서로 감사하게 될 때의 환희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 환대를 받는 경험을 해보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방인을 넘어, 모든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의 행위가 주는 유익의 경험이 쌓이니 관계 속에서의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진다.


경계인으로 살아가면서 삶으로 배우게 된 무조건적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가능성을

이번 연주를 준비하며 더욱 많이 느낀다.

더 많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더 많은 이들을 환대하며 살고 싶다.

넘어지고, 배신을 당하고, 밟힐지언정.

환대의 순간에 나 또한 살아나기에.


나를 빛나게 하기 위한 연주가 아닌, 내가 주인공인 연주가 아닌 오롯이 노래를 만든 분을 위한 연주를 해 볼 시간이 너무나 기대된다.

 


함께 읽기

데리다의 책 

http://www.yes24.com/Product/Goods/1441191

[데리다와 무조건적 환대에 관한 좋은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seura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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