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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Dec 07. 2021

건널목을 건너는 다양한 방법

신호등의 기둥을 만지는 사람

만약 우리가 길을 가다가 건널목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게다가 그 사람이 신호등이 달려있는 기둥 여기저기를 쓰다듬으며 당황하고 있다면?


오늘 세계시민교육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위의 질문을 했더니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1. 뭐 때문일까? 하면서 쳐다본다.

2. 만취 상태인가?

3. 무슨 상황인가 궁금해하며 본다.

4. 장애를 지니고 있는 분인가 생각한다.

5. 혹시 호주에서 오신 분인가? 하고 생각한다.


1-4번은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생각들인데, 5번의 대답은 좀 의외일 수 있을 것이다.

(4번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

그 학생은 직전 수업에서 호주의 신호등은 눌러야 켜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할 것 같다고 하였다.

(배운 것을 바로 적용하는 학생분께 박수!)

그런데 과연 1-4번이 '보편적' 반응일까?어떤 기준 때문에 위의 반응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건널목을 건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한국에서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면 빨간색 불이 초록색 불로 자동으로 바뀌지만,

호주처럼, 독일의 건널목을 건너려면 신호등 기둥에 붙어 있는 버튼을 누르거나, 붙어있는 노란색 물체를 만져야 한다.

BITTE BERÜHREN = PLEASE TOUCH

반대로 한국 사람이 아무런 정보 없이 호주나 독일에 처음 도착하여 아무도 없는 길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하염없이 기다려도 바뀌지 않는 신호에 당황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5년의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현지 동생은, 하노이에서 건널목을 건너려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조건 앞만 보고 직진해야 한다고 했다. 결코 좌, 우를 봐서는 안된다고.

물론 이제 전철이 개통되고, 점점 더 도시화되어가는 2021년의 하노이에서는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은 정보의 홍수이기에 이런 간단한 상황은 몇 번의 검색 만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이제 한국도 학교 앞 신호등은 눌러야 바뀌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다지 당황하지 않을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인지 능력과 지각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것저것을 시도해 볼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신호등 아닌 '서로 다른 문화'와 '에티켓'. '사회적 통념'들 앞에 설 때에는 결코 간단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가진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기 쉽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잘못된 행동', 혹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쉽게 속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점점 더 깊이 생각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애매모호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다문화화 되어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학기 세계시민교육과 글로벌프론티어프로그램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더 편한 길, 안전한 길, 보호받는 길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다 같이 살 수 있는 길,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길, 서로 조금 더 관용하고 환대하는 길을 걸어줬으면 좋겠다.

나 먼저, 계속, 항상.

내가 습득하고 세운 스스로의 기준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조심스레 살아가야겠다.

상호문화적으로, 차이에 긍정적으로 접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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