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년 첫날
그렇다.
나는 방금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데드라인에는 맞추어야 해서 겨우, 꾸역꾸역 시작한 일을 마쳤다.
나의 신년 첫날은 제일 하기 싫은 일과 하루 종일 함께 보냈다.
게다가 사실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의 하기 싫은 일로 하루의 절반을 썼다.
머리에 김이 나고, 가끔은 어지럽고, 허기진 날이었다.
이놈의 당뇨병만 아니었더라면 초코퍼지 케이크를 마구 퍼먹으며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중간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컵라면을 세 개쯤 먹었을 텐데.
점심으론 보리 국수를 삶아 들기름과 간장에 비벼 먹고, 흑미 김밥 세 개로 저녁을 때울 수밖에 없어서 더 힘이 없었던 걸까.
이런 날에는 보이지 않는 한쪽 눈도, 무엇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당뇨병도,
여전히 지끈거리는 다친 오른 손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뭐 하나라도 편히 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은 그런 날.
겨우겨우 모든 결과물을 입력하고, 고민하다 차라리 내가 욕먹고 말자는 마음으로 수정하고, 엔터를 눌렀다.
이젠 잘까 싶었는데 자꾸 말똥말똥해져서 닫았던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르르 오늘 하루를 쏟아 놓고 나니 다시 조금은 힘이 난다.
노트북을 다시 열기 전 까지는 스트레스가 턱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는데.
아마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다시 내 눈도, 당뇨병도, 손도 견뎌지겠지.
내일도 내일의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주어지는 시간과 일과에 감사하며 살아질 것이다.
며칠 전 어렵사리 구한 책을 선물 받았다.
정신없이 연말을 보내느라 받아놓고 이제야 열어 보았다.
세상에..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과 글들이 가득하다.
여행작가가 한 나라의 작은 마을을 걸으며 쓴 청량하고도 향기 나는 글로 위로를 받는다.
푸른 바다와 달콤한 설탕 마을 이야기로 다시 마음이 말랑해진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로 한 해를 연 흐리멍덩한 날을 맑고 청명해 보이게 해주는 선물이다.
갑자기, 제일 하기 싫은 일을 1월 1일 첫날 해버렸으니,
올 해는 첫날보다 더 재밌는 내일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래.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균형지게 하며 살자.
웰컴, 2022년!
2021년 제 글을 읽어주신 구독자님들,
그리고 스쳐 지나가며 들러주신 작가님들...
모두 모두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계속 끄적일 동력을 얻었습니다.
올 해도 차근차근 써볼게요.
새해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생기시는 나날이기를 소망해봅니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