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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Mar 25. 2021

장애인 중심, 독일 버스에 놀라다

경계에서 부유하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서 #3

내게 몇 급 장애인이냐고 물으셨던 분이 그 질문을 하신 이유는 장애인으로 등록을 하고 난 후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시기 위해서였었다.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일. 

특히 장애인들이 장애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과 제도들이 있었기에 어서 빨리 장애인으로 등록을 하고 혜택을 누리라는 것이 그분 이야기의 골자였다.


시각장애인으로 등록을 하는 경우, 국민뿐 아니라 유학생, 이주민들에게까지 시력을 향상하거나 눈이 보이지 않을 때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했다.

실제로 알아보니 안경, 렌즈는 물론이고, 렌즈액부터 보관함, 선글라스까지 무료로 제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장애인 등록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장애를 장애로 인정하게 된 이후 장애인을 바라보는 내 인식,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은 변화하였으나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으로 살며 무언가를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독일에서의 장애인 등록을 포기한 채 한쪽 눈을 위한 렌즈를 한국에서 계속 공수받아 살았다(당시의 독일 렌즈 값, 안경 값은 가히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등록은 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인정하게 된 후에는 다양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장애인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불쌍한' 존재로 느껴졌던 분들이 '역사가 있는', '스토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일의 베리어프리 서비스들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1997년, 처음 독일에 도착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버스 시스템이었다.

정류장마다 쓰여 있는 출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것은 물론(당시에는 정말 놀랄 만큼 1초도 틀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늦어지기도 한다고 들었다.) 승객들이 많아도 다음 정류장 도착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가장 놀랐던 것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 버스의 존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는 저상 버스가 없었고, 계단을 올라야만 버스를 탈 수 있었으니 저상버스의 존재만으로도 놀라웠는데, 버스가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는 길, 버스를 기다리는 내 앞에 전동 휠체어 한 대가 서 있었다.

전동 휠체어가 버스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고 저분은 왜 여기에 계시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가 천천히 정류장 앞에 섰고, 문이 열렸는데, 갑자기 버스가 변신을 하는 게 아닌가!

버스가 오른쪽으로 천천히 기울어지더니 버스 하단에서 길고 넓은 판이 뻗어져 나왔다. 놀라고 있는 사이, 전동 휠체어를 타신 그분은 너무나 익숙하게 그 판을 통해 버스 중앙 넓은 곳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모든 승객이 다 자리에 앉은 후에 버스는 천천히 출발했다.


모두가 너무나 익숙하게 버스를 타고 가는 그 시간..

홀로 느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독일의 길, 건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던 많은 장애인 분들은 그만큼 휠체어로 닿을 수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휠체어 탄 분들을 많이 보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휠체어가 다닐 만한 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독일에서 7년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도록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약 45%가 실외활동이 불편하다고 응답했고, 불편한 이유로 47%가 편의시설이 부족해서라고 응답했다. 환경을 조금만 바꾸면 걷지 못하는 다리가, 잘 잡지 못하는 손이, 보이지 않는 눈이, 듣지 못하는 귀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진짜 장애는 모두를 고려하지 않은,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높이 세운 환경에 있다.
이지선 공존의 지혜 | 장애의 장벽을 허무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 중 발췌*


자동문도, 막대 모양의 문고리도, 저상버스도, 처음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디자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그러한 선한 생각을 통해 장애가 없는 이들도 편해지는 훌륭한 제품들이 탄생했다.

나만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할 때, 결국에는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을 길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모두를 위한 디자인'과 그러한 생각들이 넘쳐나 우리 모두가 서로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기를 기대해본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혜택은 누리지 못하였으나 수많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누리고 왔던 독일에서의 시간이 문득 그리워진다.



* 인용문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11213230001285


- 독일 버스 시간표 사이트: 예)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출발

https://fahrplan-bus-bahn.de/hessen/frankfurt-main/haltestelle/frankfurt_am_main_hauptbahnhof-100010c#/


- 장애를 가진 이들의 날: 장애인들에게 쾌적화되는 버스들

https://www.eurotransport.de/artikel/tag-der-menschen-mit-behinderung-busse-werden-behindertenfreundlicher-10577325.html

- 독일 버스와 기차의 베리어프리 서비스

https://www.bus-und-bahn.de/service/barrierefreih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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