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1차 부작용의 쓰나미
가장 강력한 항부작용제는 책이다
연재 시작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월, 수, 금에 글을 썼는데 이번 주는 도저히 글을 쓰지도, 올리지도 못했다.
노트북을 열어보니 첫 화면에 지난 일요일에 켜둔 피피티가 그대로 있다.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한 후로 이런 적이 없었는데 LMS로 진행하고 있는 학교 수업 과제도 이제야 올렸다.
정말로 강력한 항암제 부작용의 쓰나미를 한 주 내내, 아니 항암 3일 차 후부터 지금까지 겪고 있다.
오심이 사라지지 않아 계속 주사를 맞았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다 오늘 아침에야 겨우 사라져 가는 느낌이 시작되었다. 입맛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화학약품 가득 실은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사라져서 너무나 살 것 같다.
항암 14일 차였던 어제는 탈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4일 차 되면 머리가 빠진다더니, 정말 놀랍게도 머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머리를 남는 내내 온몸에 감기는 머리카락들. 머리를 말리며 잡은 손에 그대로 남는 뭉텅이들.
엉킨 곳을 빗었더니 한 움큼이 떨어진다.
머리를 뭉쳐 공으로 만들었더니 고양이 털 공 같은 게 몇 개나 만들어졌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골룸이 될 것 같아 머리를 밀고 가발을 구입해 왔다.
다행히 생각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여러 번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고, 머리는 언젠가 자라는 것이니 크게 신경이 쓰지 말자 생각해 왔다.
오히려 충격적이었던 건, 머리가 밀려가며 내 모습에서 친정 아빠의 모습이 더 깊고 진하게 느껴졌다는 것.
집에 오니 둘째는 깔깔 웃었고(이전부터 엄마가 민머리가 되면 한 번만 웃어도 되느냐 허락을 받아 놓았다) 첫째는 생각보다 괜찮다며, 외삼촌이랑 닮았다고 위로(?)해주었다.
남편과 저녁을 해주러 와 계시던 엄마는 두상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다.
G.I. Jane이 된 느낌이다. (머리만)
머리가 가볍고, 시원하고, 여러모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0.5mm 남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길 때의 촉감이 강아지를 만지는 마냥 기분이 좋다. 이 머리카락들도 곧 다 빠진다고 하니, 며칠간 자주 쓸어 넘길 예정이다.
새로운 일이 가득한 이 시간을 지탱해 주는 건 역시 책이다.
나의 최고 항부작용제.
이번 주 내내 누워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마법의 섬 살트크로칸>, 니콜 슈타우딩어의 <새드엔딩은 취미가 아니라>, 이민진의 <파친코> 1, 2권을 읽었고, 이제는 안희연 시인의 <당근밭 걷기>를 읽고 있다.
힘이 없어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 할 수 있는 것이 책 읽는 것뿐이라 울렁이지만 않는다면 천국에 와 있다고 여겨질 시간이다.
유방암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아픔과 고통, 상실과 슬픔.
하지만 그를 덮고도 남을 사랑, 기쁨, 감사, 환희도 가져다주었다.
겨우 1차를 지나고도 이렇게 많은 감정들을 경험하고 있으니 앞으로 남은 긴 여정에 어떤 일들이 찾아와 줄지 기대해 본다.
달콤쌉싸름한 인생이 항암의 시간 안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