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는다 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ABO식혈액부적합, 그리고 전신교환수혈

by Sonia


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2.4kg, 작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던 나는 살이 더 빠져 2.2kg가 되었고 게다가 며칠 뒤에는 심각한 황달 증세가 나타났다고 한다.

황달의 원인은 ABO식 혈액 부적합. 엄마 뱃속부터 혈액 문제로 죽거나 심한 장애를 후유증으로 갖게 되는 희귀병.


가족 한 명 없이 홀로 결혼식을 치르고 출산까지 감당한 우리 엄마가 나를 살리기 위해 동의서를 받아 든 날은 아빠가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보러 독일로 떠난 날이었다고 한다.


죽는다 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내 혈액을 한쪽으로 다 빼고 건강한 성인의 혈액을 수혈해서 내가 살아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전신교환수혈을 하다 혹 죽는다고 해도 책임을 병원에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

엄마는 홀로 동의서에 사인을 하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은 한국에서도 많이 시도되고 있지만, 그 당시 전신 교환수혈은 비엔나 그 병원에서조차 처음 시도될 정도로 쉽지 않고, 보편적이지 않았었다.

사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죽었을 나.

비엔나에서조차 살아난다 해도 심한 뇌성마비까지 올 수 있다 했다고 하니 나를 수술실에 보내 놓은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다행히, 감사히, 수혈된 피는 내 온몸을 돌며 새 생명을 허락해 주었다. B형이었던 나에게 엄마의 혈액형인 O형 성인의 혈액이 수혈되었고, 그 피는 나를 죽여가던 나의 피를 대신하여 B형 혈액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덤으로 얻은 삶이 시작되었다.



건강히 살아난 나


모두가 한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고?



내 눈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신체검사 날이었다.

선생님은 시력 검사를 한다고 하셨고, 우리 반 전체를 한 줄로 세우셨다.

칠판 앞에는 네모난 흰색 기계가 서 있었다.

1번, 나와. 눈 가리고 읽어봐.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시력검사 판 앞에 선 첫 친구가 왼 눈을 가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왼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내 앞의 친구들이 줄줄이 양쪽 눈이 다 보이는 것을 확인하는 내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에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왼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니!

7살 어느 날, 벽에 붙은 족자 앞에 동생을 데려가서 너도 오른쪽이 안 보여?라고 물었을 때 분명히 3살짜리 내 동생이 응, 이라고 했었는데.

동생도 왼 눈으로만 본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세상 모든 사람이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생각하면서 왜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을까?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데 왜?라고 생각해 왔었다.

어쩌다 외눈박이 외계인이 나오는 만화를 본 날이면 하나님이라는 분은 왜 사람은 저 모습으로 만들지 않고 보이지 않는 눈 하나를 더 만드셨을까 궁금했다.


나만 다른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왠지 외계인이 된 것만 같았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나의 모습을 알리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서,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얼른 검사판 맨 윗줄의 '4, C, 그'를 외웠다.

왼쪽 눈을 조금 덜 가린 채 시력검사판을 보며 선생님 팔의 각도로 위치를 대충 가늠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알아채지 못하셨고, 그 이후 매 신체검사 때마다 시력을 0.1로 만들어서 남과 다른 모습을 숨겼다.


4학년,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 종일 구토에 시달리는 극심한 두통으로 안과에 가기 전까지.


#ABO식혈액부적합 #전신교환수혈 #시각장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