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N 잡러로 살기 #4 | 대학원 박사과정생(1)
박사학위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 하는 거라지.
박사 타이틀을 붙일 깜냥은 되지 않지만, 궁금쟁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맞다.
매일매일 궁금한 게 너무 많으니..
드디어 시작되었다.
궁금증 해결을 위한 박사 논문의 첫걸음.
휴학만 하지 말자, 를 목표로 달려왔는데 드디어 박사 과정 수료 학기 중반에 논문을 시작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지도교수님의 조언]
1. 박사 논문은 학술적 기여를 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
2. 논문 저자의 지나온 삶과 전공이 담길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
3. 문헌연구는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
독일 한인 이민 2세 연구로 연구계획서를 쓰고 들어간 박사과정.
1학기 말 만나 뵌 지도교수님은 방향을 틀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사실, 그 방향은 내가 결코 이 학교에서 쓸 수 없을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졸업 이후로 묻어둔 것이었다.
교수님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질적 연구방법론으로 인터뷰를 정리하려던 마음을 접고 문헌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교수님은 박사 논문은 일반적인 글에서 더 나아가 학술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기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며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원래 쓰려던 주제도 좋지만, 그 주제보다 조금 더 박사 학위 논문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시며 좋은 논문은 저자의 삶과 공부가 담긴 글이라고 하셨다.
나의 경우 독일에서의 삶, 지나온 여러 전공으로 인한 독특한(?) 삶의 흔적이 있으니 그것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주제를 찾아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조금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철학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주제.
이미 독일에서 10명의 인터뷰를 녹음해 왔고, 또 녹취 작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원래 쓰고 싶었던 주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에 독일 2세 주제는 언젠가 학술지에 실을 수 있도록 잠시 두기로 하고, 새로운 주제를 담을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싶은 현상들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 시대를 고민하고, 독일인 중에 그 문제를 다룬 사람을 찾는 것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교수님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사랑? 박사학위 논문과 사랑은 대체 무슨 상관인 거지?
황당하게 쳐다보는 내게, 논문을 쓰는 과정은 너무나 지난하기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연구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무릎이 탁, 쳐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긴 긴 시간 동안 2세 아이들을 생각하며 연구 주제까지 연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문헌 연구 역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니.
오랜 시간 끝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랑할 수 있는 그분을 찾았다.
학부 수업 강의 준비를 하다 읽은 책에서 매직아이처럼 마음속에 쑥 들어온 독일인.
내가 고민하던 시대를 살았던 그 사람.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매력적인.. 그 삶이 너무나 궁금한 사람을 만났다.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그 집 앞에 매일 찾아가 대화를 해보고 싶은 사람. 책이 있다면 모조리 구입하고, 브런치를 쓴다면 구독에 구독을 하고 싶은 그런 사람.
내가 도대체 뭘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나의 전공을 사용하여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 기쁘다.
다음 주에 드디어 사랑하게 된 그 사람에 대해 발제를 하게 되었다.
그 발제가 앞으로 얼마 걸릴지 모를 박사 논문의 포문을 여는 역할을 할 듯하다.
떨린다.
기대와 두려움이 버무려진 떨림.
오늘 자료를 찾다가 그녀의 자필 서명을 발견했다.
가슴이 뛴다.
잘 쓰고 싶다..
부족한 내 논리로 기여하거나 설득하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이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기여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