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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May 25. 2021

이끼 | 전유동

공감해주는 노래에 기대어 | 전유동 '관찰자로서의 숲' 중에서

이끼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 작사작곡 전유동


난 네가 있던 흔적이야

네가 내 곁에 있었고

내가 너의 곁에 있던 기억 말이야


지금 네가 내 곁에 없지만

나는 널 품었던 기억으로


조금 더 나는 나로 살고 싶어

조금 더 나는 나로 살고 싶어


봄이 와서 꽃들 노랗게 피어나면

나도 노랗게 웃을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지우기 위해 살았을까

그게 힘들어서 난 노랗게

부서지나봐


부서지나봐


나는 널 지우기 위해 살았는데

널 지우기 위해서 날 먼저

지워야 하나봐


[관찰자로서의 숲]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고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나는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품고 있던 물기가 사라지며 점차 노랗게 말라가는 이끼를 마주한 적이 있다.

물이 있었기에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이끼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끝내 노랗게 부서질 이끼는 웃으며 사라질 수 있는 작별을 원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갈수록 많은 것들과 멀어지고 작별을 결정하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특히, 애정이 깃든 물건을 버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곳에 애정을 분배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나로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완성된 나를 기다리다가 나로서 살게 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끼라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쉴 새 없이 나 마르다 가도 비가 오면 또 착각해
네가 있어 내가 살던 그날 같아서
날이 밝아 태양이 노랗게 뜨게 되면
내가 노랗게 말라 사라졌으면
나는 너를 지우기 위해 이때까지 아파왔는데
이제 알겠어 나는 나를 먼저 지워야 하나 봐

삭제된 노랫말, 2017. 2. 17 

전유동, 관찰자로서의 숲 13페이지에서 발췌


내가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상호문화'라는 전공을 위해 다양한 문화들을 접하고,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오른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좁고, 얕은 지식이었는지.


좀 더 넓고 깊은 앎을 위해 타전공을 기웃거리던 중 작년에 자연지리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 내내 '지리'에 대해 오해해온 시간들이 한탄스러울 만큼, 다시 새로운 전공을 시작한다면 지리학을 해보고 싶을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배웠다.  

그 시간을 통해 세계 곳곳의 지정학적, 지리학적 지식을 배운 것도 좋았지만, 세상에 수없이 많은 멸종위기종뿐 아니라 이름조차 붙여주지 못한 많은 생물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결국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던 것이 감사했고, 또 그 존재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산 세월이 부끄러웠다.


또, 미국 옐로우스톤에 자주 나는 자연 산불을 끄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그곳의 생태계를 망쳐놓았고, 이후 자연의 섭리에 맡기기 시작하며 회복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와, 관상을 위해 옮긴 식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게 됨으로 야기되는 자연 시스템 교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입장에서, 내 기준에서의 '좋게 보이는 것', '살려야 하는 것'에 집착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위험함도 깨닫게 되었다.



아티스트 전유동은 관찰자로서의 입장에서 숲을 노래한다.

관람객이 아닌, 등산객이 아닌 '관찰자'로 대하는 그의 숲엔 소중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는 등산객으로 갈 때는 그저 밟고 지나가버리기 쉬운 이끼를 자세히 관찰하는 눈으로 보아준다.

'물로 인해 나 일 수 있던 이끼'가 노랗게 부서져가는 모습.  품고 있던 물을 놓으며 스러져가는 이끼의 마음.

그의 노래는 '나'에 대해 성찰하게 해 주고, '완성된 나'를 그려놓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현재를 놓쳐버리는 나'를 멈추어 바라보게 해 준다.


매일, 매 순간 나를 나되게 해주는 만남과, 또 다른 나의 됨을 위한 헤어짐이 이어진다.

온전히 끝난 것 같다가도 비가 오며 잠시 물이 적셔지는 것 같은 만남도 있다.

모든 것을 다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


결코 나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세상. 혼자 자란 것 같으나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고, 혼자 먹은 것 같으나 모든 먹거리가 눈 앞에 놓이기까지 수고해주신 수많은 수고들이 있다.


잊지 말자.
매일, 매 순간 나를 나 되게 해주는 모든 존재들을.


그리고 나를 스쳐간 많은 물들을. 이제 또 놓아야 하는 물들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지금 내 곁에 나를 나되게 해주는 이들을 품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야지.

내게 남은 흔적들에 감사하면서..

 

[함께 듣기]

https://youtu.be/009YGur5Hys

전유동 이끼 | 재미공작소 20210129

https://youtu.be/iibbFGrdXNI

클라우즈 블록(Cloud's block) 활동시절 이끼  | 삼덕레코드 20181122

https://cafe.naver.com/mhdn/170353

[관찰자로서의 숲 도서 및 음반 구매처]

https://linktr.ee/Jeon_yoo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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