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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짜리 글

by 김병장병장

글을 쓴 지는 시간이 꽤 지났다. 2018년 무렵일 테니까 어느덧 8년이 흘렀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가고 싶은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적었다. 그 시절에는 내 생각보다는 글의 형식, 문장의 깔끔함 등 얼마나 일목요연하게 문단을 구성한 지가 제일 중요했다. 심사위원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쏟았다. 그러니 당연히 펜을 든다는 행위는 내게 고문 같았고, 별생각 없는 내게 생각을 강제로 주입하고 그걸 풀어내려니 죽을 맛이었다. 글은 겉만 빙빙 돌았고, 나를 포함한 어떤 누구에게도 안착하지 못했다. 결국은 내가 쓴 글들은 나한테 있어 불합격과 한계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쓰디쓴 불합격의 고배를 맛보고 글쓰기를 중단했다. 내게 있어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노동이었기에 글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 나선 나로서는 노트북 앞에 앉아 다음 문장은 뭘 쓸까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주제 모르게 절필 아닌 절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합격하기 위해 쓴 습작들을 그냥 두는 게 아까워졌다. 우리 집에 금두꺼비 있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이 금으로 만든 하루살이 정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둘씩 지금 브런치 계정에 올렸고, 운이 좋게 브런치 심사를 통과했으며 지금까지 주절주절 내 생각들을 끄적이고 있다.


그렇게 있었던 일들, 생각한 것들을 브런치를 통해 글로 옮기는 데에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부끄럽지만 과거 내 글들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한다. 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면서 글에 적힌 날짜를 보며 세월이 쏜살같이 흐름에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 최근 이런 자뻑과 나이 듦을 차치하고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글들 사이의 공통분모, 술이다. 글 내적으로도 물론 닮은 꼴이 많겠지만, 글쓴이이자 글의 외적인 부분마저 아는 사람으로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바는 바로 맥주 4캔이다. 글들을 읽다 보면 느끼는 12,000원짜리 맥주 4캔의 알코올 냄새. 어찌 된 게 하나같이 다 술에 기대서 한 문장, 두 문장을 완성했던 것 같다. '아 이때 맥주 먹고 쓴 거 같은데?' 이쯤 되면 술이 없을 때 글 쓰는 내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 괜한 자격지심과 함께, 그때 공채시험 보기 전에 술 먹고 들어갈 걸 하는 진지한 고민에 휩싸인다.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내가 그 정도의 술고래는 아니니 오해마시라.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천재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술을 빌리는 것처럼, 아니면 창작을 하기 위해 금지된 걸 손대는 고뇌에 휩싸인 고독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들은 꿈에도 마시길 바란다. 술을 물처럼 마시기엔 저속노화에 빠져 식단에 누구보다 힘쓰는 건강염려증이 심한 겁쟁이이고, 일목요연하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훌륭한 글이나 창작물은 내 인생엔 없을 것이라 확신하니 말이다. 아마 내 글은 예전이나 지금처럼 주절주절 헛소리 비슷한 이야기들에서 머물게 4k 블루레이다.


오히려, 한 달의 몇 번 혼술을 하는 시간에 끄적이는 나만의 레크리에이션이라 여겨주시길.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나만의 감정 해우소 내지는 내 존재감을 비치는 생존형 글쓰기가 계속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굳이 바라자면 내가 겪고 느끼는 걸 꾹꾹 눌러 담아 몇 개의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단을 이룬 이 글이 내 몇 안 되는 독자들에게 일말의 공감, 티끌 같은 헛웃음이라도 짓게 만들길 소원해 본다. 어째 글의 마무리가 후다닥이다? 죄송합니다. 취기가 올라 얼른 양치하고 자야겠네요. 여러분도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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