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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Apr 08. 2020

#7 아빠의 수술 ②

예후에 기대게 되는 나날


복강경 수술


아빠는 '복강경 수술'을 통해 대장의 절반 정도를 잘라냈다. 그런데도 수술 일주일여 만에 퇴원 수속을 할 수 있었다. 아빠의 수술 흉터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수술이 진행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회복력이 빠르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물론 그 회복력에는 아빠의 어마어마한 고통과 노력이 있었다.



수술, 그 결과


아빠가 퇴원하던 날 언니와 나는 다소 긴장한 채로 병원 로비에 앉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첫 수술을 받고 퇴원할 때에는 정말 엄마의 낯빛이 좋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술 당일 병원은 보호자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의 수술 결과에 대해 말해주었고, 그 내용이 마냥 낙관적이진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아빠는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 입원하였었고, 코로나 19 때문에 우리는 아빠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그 전화 내용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대장을 절반을 잘라내더라도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없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휴대폰 너머 '전이'라는 단어가 다시 들렸을 때에는 대상도 불분명한 실망감이 엄습했다. 림프절 전이가 보인다고 했다. 자세한 건 또다시 퇴원 후 내원했을 때 알 수 있겠지만, 일단 항암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언니는 침착하게 전화를 끊었고 내게 말했다.


림프절 전이면 최소 3기다.


대장의 절반을 잘라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초기는 아닐 것이라 짐작했으나 막상 이렇게 연락을 받으니 기대한 바가 있었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비로소 우리가 암환자의 보호자가 됐구나를 여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걸어서 퇴원


아빠의 예상 병기와는 별개로 아빠의 회복력은 내 예상보다 좋았다. 병원에서는 매일 아침 문자로 아빠의 상태를 브리핑하는 문자를 보내왔는데, 매번 아빠가 병식으로 나온 미음, 죽을 모두 먹어 비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엔 기분이 좋다가도 그러나 빈혈 수치가 계속 있다는 말에는 다시 기분이 저조해졌다. 그런 시간을 돌고 돌아 퇴원 날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아빠를 부축하러 한 명은 올라가야 하는 걸까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고모와 사촌언니까지 대동한 '아빠 퇴원 사절단(?)'이 그렇게 토론을 펼칠 무렵 소리 소문 없이 아빠가 뒤에서 등장했다. 그것도 입원할 때보다 더 혈색 좋은 얼굴로 말이다. 놀랍고 반가웠으며 안도했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아빠의 입원 썰을 들으며 고모네로 향했다.


알고 보니 아빠는 우리에게 엄마가 수술할 때 겪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고 한다. 걷기 운동하래서 열심히 걷고, 밥도 주는 대로 잘 먹고. 물론 복강경 수술이라 회복력이 빠른 것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아빠는 퇴원했다. 3월 22일의 완연한 봄날이었다.

다음 외래까지 당분간 오지 않을 병원 근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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