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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Aug 29. 2020

#8 아빠는 항암치료랑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자꾸 변수가 생긴다

근황


이 매거진의 글을 작성한 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을 알아챘다. 그동안의 일들을 심심하게 풀어보자면, 아빠는 수술 경과도 좋아 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항암 기간 동안의 에피소드를 묶어 암환자 가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싶었으나, 6개월 정도로 예상된 항암치료 기간 동안 나는 서울, 아빠는 고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의 일들을 쓰기엔 어려웠다. 아빠의 항암 주사는 아래의 절차로 이루어졌다.


1. 항암치료 예정일 전날 서울로 올라와 내 자취방에서 하루 묵는다.
2. 다음날 새벽같이 병원으로 가 검사 및 항암 주사를 맞는다.
3. 항암 주사를 일찍 맞는 날엔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지만, 그렇지 못한 날엔 다시 내 자취방으로 와 며칠 더 묵으신다.


내가 아빠를 마주하는 기간은 아빠가 항암을 맞기 직전과 직후 몇 번이기 때문에 아빠의 증상이나 상태를 세밀하게 살필 수가 없었다. 언니와 아빠의 경험담(?)에 따르면 항암제를 맞기 시작한 날과 그다음 날까지는 입맛도 없고 양념이 되지 않은 고기는 비린내가 나서 먹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사를 늦게 맞아 다시 내 자취방으로 아빠가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단백질을 섭취하게끔 만드려고 김치나 양념을 베이스로 한 고기볶음 등을 준비하곤 했다. 


또한 자꾸만 '약 냄새가 난다.'라는 식을 말을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음식에서도 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집으로 와서야 먹을 수 있었다. 대장암에 적용되는 항암제가 무엇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아빠만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겠지만, 다행히도 아빠는 언니나 내가 차리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주었다. 체중도 빠지지 않고 잘 견디고 계신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일부분 생기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을 정리해서 글을 써 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항암치료 기간 중 아무런 변수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8월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삶이다'라는 문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깨닫는 시기였다.



갑자기 결석이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건 7월 말~8월 초로 기억한다. 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 내용은 아빠가 결석이 생겨 '시술 같은 수술'(정말 이런 표현을 썼다)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당황했다. 이번엔 암이 아니고 결석이라니 내게는 아주 다행인 소식이었지만 병원에 1박 2일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안녕하지 못한 소식이었다. 아빠는 8월 셋째 주 올라와 사전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당황한 점은 또 있었다. 이때까지 엄마의 수술/치료, 아빠의 수술/치료 과정엔 모두 언니가 대표 보호자로 동행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언니가 8월에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즉, 내가 모든 과정에서 보호자가 되는 첫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는 겁이 났다. 아빠는 수술받기 전이나 후에 아프고 예민해져 의사소통을 잘 안될 수도 있는데 과연 내가 그 사이에 제대로 처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엄마의 투병과 아빠의 투병은 내게 정신적인 단단함은 주었지만, 아주 단순한 감정인 병원에 대한 무서움을 지워주진 못했다. 그래서 언니와 연락을 끝내고 나서 한동안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전히 난 엄마가 처음 암에 걸렸던 중학생 때의 마음에서 자라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 같은 마음에 이런 타이밍에 또 병원을 가야 하나 싶은 심술도 생겼다. 아빠가 올라오기 직전까지 나의 이런 마음가짐을 고치려고 세상이 자꾸만 내게 미션을 준다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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