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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Feb 04. 2021

면접 D-1, 면접 준비를 안 하기로 했다.

놀기로 했다.

내일이면 두 달만에 다시 보는 면접이다. 퇴사 이후 근 한 달 만에 맞이하는 면접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래도 구직자로서 구색을 갖춰야겠다 싶어 면접 보러 가는 회사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검색하다가, 금방 관두었다. 아무래도 긴장돼서 손에 뭐가 잡히질 않았다. 몸 컨디션도 너무 엉망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면접 준비를 접었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나는 항상 중요한 시험이나 일정을 앞두고 있을 때면 꼭 두통이나, 월경이나, 감기나, 장염 기타 등등 잡다한 질병에 시달리곤 했다. 대학교에 다닐 무렵엔 시험 전날 편두통이 너무 심해 룸메이트를 불러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학생일 때야 가족이 보호자로 있을 때고, 뭔가 나는 울타리 안에 안전하게 지내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아니니까. 내 몸은 내가 관리해야 했다. 이번 면접의 변수는 월경이었다. 원체 주기가 불규칙하고 통증도 복불복으로 있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달에 걸려도 통증만 심하지 않으면 괜찮았는데 웬걸. 어젯밤부터 시작된 게 지금 이 시간까지도 허리가 뻐근해 죽겠다. 타이레놀 아니었으면 면접 못 가는 변수도 생각할 뻔했다.


아무튼 이러다 편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다른 변수까지 생길까 봐 걱정됐다. 구직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거라 구직사이트에 올려둔 내 이력서는 이미 한 번씩 읽어봤고. 구직사이트를 통한 지원이니 회사 쪽에서도 같은 이력서로 여러 곳에 지원하는 것을 알 터였다. 그래서 차라리 이럴 바엔, 내일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해당 이력서는 공용 이력 서니까, 굳이 이 이력서를 어떻게든 그 회사에 맞추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가치관과 업무 태도를 어필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말이야 이렇게 번지르르하지만 사실 많이 떨린다. 난 원래 학생일 때 발표할 때도 대본을 든 종이를 달달 떨면서 말하는 편이라 꼭 단상 뒤에 손을 숨기고 말했다. 목소리는 일부러 더 세게 내서 화난 것처럼 말한 적도 있고.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말이나 한 적도 있다. 상대방의 질문을 듣고 처음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말을 시작하다가, 말하다 보니 답변이 산으로 가는 바람에 막상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까먹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을 떠올리니 뭘 준비를 하고 말고 가 아니라 그냥 내 긴장감을 더는 게 급선무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이라곤 약간의 정보 검색과 단편소설 한 편 읽기,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영화와 유튜브 영상을 봤다. 아마 이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과일을 먹고 영화 한 편을 더 본 뒤 찜질팩을 허리에 두르고 잠들 것 같다.




면접을 보는 회사는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했다. 대학교 1학년 때 4시간 통학하던 것보단 짧은 거리지만, 어제 밤사이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 좀 일찍 출발해야 될 것 같다. 회사가 있는 곳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역으로 가야 해서 걱정이 많다. 내려서도 좀 걸어야 되던데 제발 내가 지도를 보고 잘 찾아가길 바랄 뿐이다. 


길 찾을 걱정, 내일은 어디 안 아파야 하는데, 목소리 떨면 안 되는데, 뭐 물어볼지 감도 안 잡힌다, 그래도 1분 자기소개는 만들어가야 하는 걸까, 저번 면접 본 곳은 자기소개 안 시키던데, 아 모르겠다, 근데 내가 마케터 직무로 아는 게 있나, 난 왜 1차 합격을 했나, 아무것도 못하겠다. 이럴 때 꼭 무서운 마음이 든다. 


부디 내일의 나, 좀 더 당당해라. 잘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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