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너 같은 딸 낳아라.

난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

by 정그믐

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엄마가 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다시 배 속에 넣고 싶다.
쪼매난 게 한 마디도 안 지네.


엄마는 경상도 토박이로 한평생 경상도 밖에 나가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혼나거나 잔소리 듣는 상황인 걸 알면서도 그리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대들거나 다른 이야기로 무마시켰다.


엄마 닮아서 이러는 건데?


그럼 엄마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고는 했다.


너는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어느 날은 엄마에게 그래서 나는 당신 같은 딸이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외할머니에게 혼날 때면 같은 말을 들었다고. 외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내려온 일종의 유행어였다. 나도 미래의 나의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내 성격을 빼닮은 아이라면 나도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긴 했다. 지금도 엄마가 밉다느니, 원망스럽다느니 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 말이 예전만큼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엄마가 아프고 난 뒤 나는 속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암 투병의 시작이었던 자궁암은 외가 쪽에 관련 병력이 있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투병이 길어질수록 나의 불안감도 더해갔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가족력이 의심된다면, 난 이 유전자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였다. 엄마가 아파할 때마다 난 너무 힘들었으니까, 굳이 내 미래의 가족에게까지 그 고통의 가능성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 일말의 ‘가능성’도 없었으면 했다. 엄마의 자식이었던 나는 엄마의 아픔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무조건적인 선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면서 멈춘 언니의 학업, 아빠의 경제활동, 나의 평화를 되찾고 싶었다.


균열이 생겼다고 느꼈다.


그다지 화목하진 않았지만 별 탈 없이 이어져 오던 일상에 엄마로 인한 금이 생겼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내 원망의 방향은 엄마 몸속의 암 덩어리가 아닌, 엄마를 향하게 되었다. 골초이거나 술을 엄청나게 마시는 등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암의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엄마의 잘못이라고 탓했다. 그리고선 병마의 원인에 나를 빼놓았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암이 생긴 데에 내 영향은 없다고 여겼고, 나중에는 정말 내 영향이 있더라도 내 마음 편해지고자 그렇게 했다.


그 시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항상 나보다 더 나은 상황인 것 같았고, 그래서 그들이 힘들다고 하는 부분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마음을 나쁘게 먹은 날이면 ‘집에 누구 아픈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힘들다고 울어?’라는 식의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엄마는 날 힘들게 만든 원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를 보면서 다짐했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전업주부로 살다가 암에 걸리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한 마디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엄마는 내 손에 물 묻히는 걸 싫어했다. 내 속옷도 내가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엄마가 직접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손으로 빨았다. 그래서 겨울에 학교에서 청소한다고 걸레 빨다가 부르튼 내 손등을 볼 때면 말했다.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게 키워놨더니 학교에서 손 다 버리고 오네.


엄마는 차라리 내게 많은 집안일을 시켰어야 했다. 설거지든 손빨래든, 하다못해 방바닥 닦는 거라도 매일 시켰어야 했다. 그래서 곱게 키운 딸이 당신의 병간호를 마다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았어야 했다. 이것 봐, 그렇게 아기처럼 키운 딸이 끝까지 손 하나 까딱 안 하니까 오히려 더 배신감 들었던 거잖아. 그래서 떠나던 날에도 내 이름 한 번 부르지 않은 거잖아. 그렇지?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그래서 이 말이 점점 싫어졌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는 솔직히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당신과 닮은 딸인 나를 낳아서 정녕 행복했냐고, 마지막까지 묻고 싶었으나 묻지 못한 질문이 자주 입안에 맴돌았다.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나 같은 딸은 결국 또 엄마 같은 딸이었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패턴을 끊으리라 마음먹었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또 떠올리긴 싫다. 엄마의 심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엄마, 나는 딸이든 아들이든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

그 아이가 나 같을까 봐, 그래서 엄마가 생각날까 봐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13화-이미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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