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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Mar 16. 2020

#4 아빠의 병원 데뷔戰(전)①

부제: 코로나대첩


첫 글을 작성한지도 2주 가까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았고, 그래서 글로 정리하려고 마음먹기까지 꽤 큰 결심이 필요했다. 여전히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했다가, 응원을 받고 힘을 냈다가 하는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나, 언니, 아빠 모두 소위 말하는 '혼돈의 카오스'를 겪은 것이다. 우리 가족이 이 혼돈의 기간에 무엇보다 열심이었던 일은 바로 병원에 예약을 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1편을 읽은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듯이 지금은 코로나 19가 창궐해 있어 병원 진료가 쉽지 않았다. 이 말은 즉, 아빠와 언니가 대구/경북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아닌 코로나 19와의 싸움


※ 이 글은 암환자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 중 1인의 관점으로 진행되어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적일 수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의료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는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글의 편의를 위해 코로나 19 -> 코로나로 통일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약을 잡은 병원은 서울 소재의 병원이었다. 암에 대한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를 통해서 평이 좋다는 걸 확인했고, 고모부가 지병으로 다니고 있는 병원인데 괜찮더라는 고모의 추천 멘트가 있었다. 애초에 코로나로 인해 대구/경북 지역의 병원의 기타 진료과목의 운영은 다소 불편할 것이란 우리 가족의 예측도 있었다. 고모의 추천으로 전화기를 잡은 언니는 해당 병원에 예약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물론 처음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불과 2월 중순~말쯤만 해도 예약을 잡는 게 불가능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벌어졌다. 대구/경북에 급속도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서울 소재의 병원을 방문하려는 대구/경북 거주자들에게 제약이 많아진 것이다.


확실히 하자면 아빠는 일 때문에 부산(일)과 경북(집)을 여러 번 오가는 사람이었고, 언니는 경북에서 쭉 지내는 중이었다. 이 부분에서의 문제는 아빠가 원래 있던 지병 때문에 주기적으로 경북을 방문해야 한다는 점이다. 1편에서도 밝혔듯, 아빠가 대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개인 내과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개인 내과는 부산이 아닌 경북에 있다(...) 때문에 아빠는 '최근 2주 이내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니는 당연히 YES였고.


그래서 언니와 아빠는 아예 2월 말부터 서울로 올라와 내 자취방에서 함께 지냈다. 그 좁은 원룸에서도 자가격리 수칙을 지키기 위해 KF94짜리 마스크를 24시간 내내 끼고, 식기도 따로, 식사도 따로 하면서 2주를 보냈다. 솔직히 불안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서로 불안해했다. 나는 기존의 내 약속들 때문에 종종 밖에 나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혹시나 언니와 아빠가 코로나 감염자여서, 내가 감염되었을까 봐, 혹은 내가 밖에 다니면서 걸렸는데, 집에 돌아와 언니와 아빠에게 전염시켰을까 봐 온갖 걱정을 다 했던 것 같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진행형...)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고난(?)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병원 예약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대구/경북의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예약이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물론 지역과 상관없이(이 글을 쓰는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진료를 받아주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당시 예약을 잡았던 병원들이 다시 연락이 와 예약을 일주일씩 미루게끔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다. 맨 첫 예약일은 3월 2일이었는데 미뤄져서 3월 9일이 되고 다시 3월 16일로까지 밀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걱정인 것은 예약을 이렇게 일주일씩 미루는 동안 아빠의 암이 더 진행될 경우였다. 예약이 3월 16일로까지 미뤄진 어느 날, 우리 가족과 같은 사례가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대구에 사는 임신부가 병원 진료를 위해 아예 서울 친정집에 2주 전부터 올라와있었는데도 진료를 거부당했다는 내용의 기사 등등 대구/경북 환자들의 불편을 말하는 뉴스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예약일에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일찍 검사를 받는다면 예약도 일찍 당길 수 있다


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이 답변을 들은 건 손에 불나게 전화를 붙들고 있던 언니다.)

그래서 얼른 검사를 받기로 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예고편: 언니, 아빠 모두 '음성'입니다. 물론 저도 증상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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