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를 떠올릴 때면 나는 신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사소한 가를 깨닫는다. 반면, 저 우주의 경이로움 앞에서 누군가는 절대자의 권능을 생각한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은하수 하나 펼쳐져있음을 느낀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을 통해 행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행복이란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했을 때 뇌에서 쾌락이나 즐거움을 보상으로 주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명쾌한가!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지새웠던 수많은 밤을 무색하게 한다. 과학적 접근, 내게 사랑이나 운명도 그런 식으로 설명되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운명을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운명을 믿지 않았기에 용서할 수 있었던 나의 운명. 만약 존재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나의 운명을 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다고 말하는 남자. 나의 모든 과거와 지난 선택들이 모두 자신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남자. 그 남자가 묻는다. “당신이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랑 결혼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선택, 대학을 그만두고 꿈을 좇은 일. 결국 무엇도 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생각했던 그 지난 선택과 결과들을 결국 자신과 만나도록 한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나의 남편.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이 남자와 결혼했을까? 아니,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숱한 실패를 겪지 않고 그 수많은 날을 눈이 아프게 울지 않았더라면 이 빛나는 남자의 가치를 알아볼 정도로 나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분명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퇴근 후 밤늦도록 컴퓨터 게임을 하고는 이불속으로 들어오며 “오늘 게임이 잘 됐어. 참 뿌듯한 하루였어!”하고 속삭이는 남자, 아침 햇볕에 눈을 뜨며 “후훗, 햇빛마저도 날 좋아하는군.”하고 기지개 켜는 남자는 못 만났을 것이다. 대기업 다니는 동기가 철마다 올리는 여행 사진을 볼 때 느끼는 부러움, 친구 딸은 친구에게 명품 백을 사줬다더라 하던 엄마에게 느끼는 미안함.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만날 운명으로 이 남자는 가치 있는가. 그렇다.
엄마는 나를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거참, 기도빨 되게 안 받나 보네.”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욕보일 준비를 한다.
“엄마 기도한 거 다 이루어졌으면 내가 지금…….”
“다 이루어졌어.”
무엇이, 내 실패가? 엄마는 괜히 마음 아프게 시간낭비를 한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 겪고 지나가야 할 일은 결국 겪고 지나가야만 하지. 그러니까 엄마는 그저 일어날 일을 좀 덜 나쁘게, 좀 덜 아프게 일어나도록 기도할 뿐이야.”
겨울 햇볕이 차갑지 않게 들어오는 소파 위에 기대앉아 책을 폈다. ‘살아있길 잘했다, 그때 죽지 않길 정말 잘했다.’라는 목소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들려온다. 엄마의 기도 덕분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 피식 웃는다. 겨울 온기에 후끈 마음이 덥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