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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Dec 28. 2019

뭐든지 할 수 있어

오만의 마음치유 일기 2 - '마음대로' 하라

"난 이미 꿈 다 이뤘는데?"


남편의 이런 점이 나는 참 좋았다. '초고속 인터넷과 고사양 컴퓨터, 가끔 치킨을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 남편의 꿈은 이렇게 소박했기에 자신의 삶에 늘 만족했다. 그와는 달리 나는 너무 꿈이 커서 항상 불만족스러운 걸까. 상담사인 형님이 내게 권하는 책들에는 하나같이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데, 오히려 작은 꿈을 꾸는 남편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이는 건 왜일까.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진 채 상담을 받으러 갔다. 


지난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의 불일치' 때문에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 시간엔 '마음이 몸을 따르는 삶'과 '몸이 마음을 따르는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어 보기로 했다. 



마음이 몸을 따르는 삶(즉, 몸이 주체가 되는 삶)의 모습

- 집을 나가지 않는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폭식한다


몸이 마음을 따르는 삶(마음이 주체가 되는 삶)의 모습

-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다

- 불운을 불행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 몸을 움직인다. 운동한다

- 적극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 생각날 때 한다


짧게 말해보면 (마음이) 몸을 따르는 삶은 나태함과 게으름이다. (몸이) 마음을 따르는 삶은 활기, 살아있음이다. 


"나태하고 게으른 삶은 에너지가 없어 보이죠?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가영씨가 절 찾아온 이유가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였죠. 후자의 삶은 어때요? 움직임이 있죠. 움직임에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꿈에 닿아있어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 자체로 이미 꿈을 이루고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0이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로 이미 꿈을 향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생각날 때 바로 하는 것, 글 쓰는 행위 하나하나가 이미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생각나는 것



상당을 시작하기 전에 '지금 생각나는 것'을 그려보라는 말에 내가 그린 것이다. 추상화처럼 보이겠지만 구상화다. 오로라를 그리고 싶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소묘를 기막히게 그린다. 정육면체나 구를 그리면 마치 자나 컴퍼스를 대고 그린 것처럼 잘 그린다. 하지만 마음대로 그리라고 하면 참 이렇게... 잘 안 된다)


밤하늘 아래 누워 쏟아질 듯한 별들 사이 눈부시게 빛나는 오로라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 늘 상상하고 꿈꾸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막연할 뿐이다. 하지만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오로라를 보고 있는 내 꿈에 이미 가까워진 것임을 느껴야 한다.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분명 오로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음이다.


그러면 마음이 몸을 따르는 삶과 몸이 마음을 따르는 삶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바로 '마음은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이다. 나 역시 이 괴리에서 고민하며 늘 '해야 한다'에 얽매여 있었다. 왜 '해야 한다'라고 느꼈을까?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할까 봐. 하지 못하면 내 가치가 부정되는 느낌을 받아서. 그러다 결국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했을 때는 몸을 따르는 삶, 나태함에 빠지고 만다.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을 살거나 나태해지거나. 양극단의 삶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지만 '마음을 따르는 삶'은 '해야 하는 삶'이 아니다. '마음대로 하는 삶'이다.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싶으면서도 글 쓰는 것이 두렵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글이 쓰기 싫어지는 것이다. 어떻게라도 미루고 싶어 진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없었을 때는 오히려 글이 계속 쓰고 싶었고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글을 쓰고 있는 삶, 그 삶이 되어야 한다. '종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 상태를 공자는 나이 칠십을 일러 말했지만 좀 더 일찍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즈음,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꿈의 크기와 행복에 대해 형님께 질문했다. 작은 꿈을 꾸는 게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닌지, 남편의 꿈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다. 그러면서 꿈에 관련된 내 오랜 기억들을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외국에 나가 모험하며 새로운 세상을 느끼고 싶었다. 학창 시절 장래희망은 외교관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다큐멘터리 감독, 호텔리어 등이었다. 하지만 내가 꿈을 얘기할 때마다 엄마는 내게 "그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건 뭐 아무나 되는 줄 아니?"하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게, 그때 나는 공부를 정말 잘했다. 반에서 꼴등 하는 애가 의사나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할 때도 조심하고 꺼려야 할 말들을 전교에서 1, 2등 하는 학생이었음에도 늘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거나 포기하거나 했다. 나는 두 가지를 대개 동시에 했다. 어차피 난 안 돼, 내가 뭐라고, 하는 생각을 갖은 채 미친 듯이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학창 시절이 내겐 지옥이었다.


"남편의 꿈이 뭔지 여기 한 번 써볼래요?"


'초고속 인터넷, 고사양 컴퓨터, 가끔 치킨을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 참 단순해서 명확하다. 


"여기에 눈에 안 보이는 게 있나요? 내면적인 것은요? 내면의 아름다움을 아는 가영 씨가 왜 이게 부럽지?


어렸을 때 가영 씨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뭐예요? 그런 건 힘들어, 네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니? 그런 말을 듣고 싶었어요? 아니죠. 무슨 말이 듣고 싶었어요? 무슨 말이 진짜 듣고 싶었어요?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아니에요?


제가 도련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냥 상담자와 내담자 수준으로 관찰했을 때 도련님은 이미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란 말을 충분히 듣고 자란 사람이에요. 여기 적어놓은 꿈은 그냥 외피적인 것들이에요. 이 사람은 이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란 생각이 내재되어 있어요. 게다가 그런 자신을 부인인 가영 씨가 존경까지 한다니까 얼마나 행복해요."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을까. 내 꿈의 크기가 커서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뭐든지 꿈꿀 수 있고 그 꿈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늘 그게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무언가를 계속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눈에 보이는 진척이 없을 시 '역시 난 안 될 사람이야', '내가 그렇지' 하고 포기하고 죽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형님에게 미션을 받았다. 

엄마에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란 말을 들으라고 했다. 상처를 준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담 후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날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내가 상담을 받는데, 옛날에 엄마가 나한테 (이러쿵저러쿵)했으니까 나한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줘."

나는 이제 엄마에게 사과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과거를 용서하고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라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내 예상과 달랐다. 


"가영아.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자기 탓을 해. 내가 잘못 키워서, 내가 그때 그랬기 때문에, 하고 자신을 원망하지. 나도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몰랐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지금이야 후회하지. 그런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요즘은 부모교육 같은 게 많다고 해도 그땐 그런 것도 없었어. 엄마가 뭘 알고 그랬겠니?"


그 말을 듣자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항상 타인은 내 생각을 뛰어넘는다. 


"그냥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그 한 마디만 해주면 안 되는 거야? 그게 그렇게 어려워?"


전화를 끊었다. 힐링하려 했다가 마음만 더 불편해졌다. 

그 날 하루 동안 나는 집안의 냉장고와 찬장을 뒤져 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꺼내 먹기 시작했다. 집 밖엔 나가기 싫고 집에 있는 음식은 손에 잡히는 데로 입에 넣었다. 

목 위로 음식물이 자꾸 넘쳐오를 정도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엄마"

"응"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왜냐하면 엄마 딸이니까. 엄마 딸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 가영아.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엄마 딸이고 하나님 딸이니까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엄마가 미안했어."


결말은 이랬다. 내 상처를 이유로 남의 상처를 헤집어 놓으면 안 되는 거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해야 했다. '나는 엄마 딸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말했어야 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기에 완벽할 수 없었음을, 엄마도 그저 그녀의 엄마가 그녀에게 했던 그대로 자신의 딸에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새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후 며칠을 나는 계속해서 나태함 속에서 몸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 쉽게 회복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힘을 내어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 며칠 간의 일로 인해 깨달은 바가 있다. 한낱 감기약도 몸이 조금 호전된 것처럼 보인다고 환자 마음대로 복용을 끊어선 안 된다. 처방된 약을 모두 먹어야 한다. 그래야 약에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조급한 감기 환자같이 나 역시 조금 상태가 좋아졌다고 '엄마에게 이 얘기만 들으면 난 다 치유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거야.' 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 깊숙이 내상을 입었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속단했던 것이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글쓰기는 아직 내게 '마음대로' 하는 수준이 아닌 '해야 한다'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언젠가 변할 거라 믿는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난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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