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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Jan 20. 2020

내가 되는 시간

오만의 마음치유 일기 - 번외 편 (1)


보노보노, 내가 갑자기 우니까 곤란하지?
그럼 갑자기 울지 않고 나중에 우는 건 괜찮아?
내가 갑자기 잠들면 곤란하지?
그러니까 자기감정대로만 행동하면 상대방은 곤란해하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는 거야. (보노보노 중에서)



변했다. 언젠가부터 새해 소망이나 계획 같은 것을 세우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일이 좀 잘 되기를, 살이 좀 빠지기를, 가족이 모두 건강하기를 하는 바람은 있지만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며 매일 영어 단어 스무 개 씩을 외우겠다는 둥, 군것질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둥의 호기는 부리지 않는다.

다만 올해 다짐한 것이 있다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화가 나면 상대가 누구든 내가 화가 났음을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다.

벌게진 얼굴에 퉁명스러운 말투, 냉소적인 태도.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고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서야 내가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나는 솔직하다고 생각했고

감정을 숨기는 사람을 용기가 없거나 지나치게 사회적인 인간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얼마나 미숙하고 부적절했던가를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깨닫는다.


갑작스러운 울음, 지나치게 흥분한 채로 내뱉는 말, 대응의 의지를 상실케 하는 언성.

이런 것들이 상대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 지를 떠올리며 내가 상처 줬을 이들을 생각한다.



나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바로 운동과 정리정돈이다.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결국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미생 중에서)



사뭇 관련 없어 보이지만 '체력을 다지기 위한' 운동은 하루를 대하는 나의 자세와 상대방을 향한 나의 태도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그것이 주는 피로감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소홀히 대한다는 것 역시 마음이 아닌 몸의 영역임을 알게 된다.  '최선을 다한다'에서 체력에 의해 나의 최선은 넓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는 얘기가 있다. 힘든 상황에서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몸이 지치면 짜증은 쉽게 찾아온다. 짜증은 결국 내 조급한 마음보다는 피곤한 몸에서 나올 때가 많다.


정리 정돈을 하는 것과 나의 다짐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요리를 하려고 한다 하자. 그런데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한 더미 쌓여 있다.

글을 쓰려하는데 책상 위가 엉망이다. 읽어야 할 책은 어디 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이 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이 언제 선행을 베푸는가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그건 바로 본인이 '여유'가 있을 때였다. 도움을 청하는 이를 외면하는 이유는 그의 '인성' 때문이 아닌 5분 후에 있을 시험이나 면접 약속 때문임을 연구 결과는 보여줬다.

여유 있는 상황을 만들려면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산적해있는 서류 뭉치 앞에서 남에게 호의를 베풀기는 어렵다.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 앞에서 요리를 하려는 마음은 무너지기 쉽고 지저분한 책상 위에서 글을 쓰려는 의지는 쉽게 사라진다.


66일.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의식이 무의식이 되는 기간이라고도 한다. 2020년의 스무날이 지난 지금, 나의 다짐은 또다시 무너지고 나태하고 게으른 하루가 불쑥불쑥 찾아온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66일이라는 시간을 버텨보려 한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습관.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책상을 깨끗하게 치우는 습관.

이를 통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내가 되려 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로 인해 네가 곤란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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