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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Feb 03. 2020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오만의 마음치유 일기 - 번외 편 (2)


왜, 그럴 때 있잖아. 나쁜 사람은 아니고, 그냥 나랑 맞지 않던 사람들이 내 인생에 한꺼번에 몰려 있을 때. 그때가 나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그 시간이 내 인생과 내 성격을 몽땅 망가뜨려놔서 도저히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여전히 가끔 해. 참 슬픈 일이지.


'라떼는 말이야~', 내 고향 도시가 아직도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었어. 중학생 때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특출 날 정도는 아니었지. 그래도 운 좋게 지역 내 가장 상위 고등학교에 들어갔어. 그 해에 신생 고등학교가 두 개나 생겼고 자사고로 빠지는 뛰어난 친구들도 많았으니까. 어쨌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반 배정 고사를 실제 실력보다 너무 잘 쳐버린 게 화근이었던 거지. 1학년 전체 학급이 열한 개, 11반까지 있었는데 전교 1등부터 1반, 2등 2반, 이런 식으로 배정되었어. 난 11등이었고 11반에 일 등으로 들어가게 됐지. 그래 봤자 각 반 일등 중엔 꼴지였는 데 왜 그렇게 담임 선생님은 내게 부담을 줬는지 모르겠어.


"야! 너희 가영이 공부하는 거 안 보여?"


반 애들이 떠들기라도 하면 선생님은 복도를 지나다가 교실 문을 쾅쾅 치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러면 아이들의 눈은 자연스레 나를 향하게 되었고 같이 놀고 있다가도 급하게 나는 공부하는 척을 해야 했지. 그런 일이 몇 번 일어나고 나니 나는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자리를 뜰 수 없었어.


고등학교 때는 왜 그렇게 시험이 많았는지 몰라. 각종 모의고사를 한 달에 적어도 한두 번은  꼭 쳤지. 선생님은 전교 등수를 매번 교탁 근처 게시판에 붙여두고선 반 아이들 성적을 형광팬으로 표시하셨어. 간혹 등수가 바뀔 때마다, 나보다 성적이 잘 나온 반 친구가 있을 때마다 내 이름을 거론하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렸어. 못 들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걸로 넘길 수 있을 만한 멘탈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어, 나는.


선생님이 자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해도, 그로 인해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도 그것을 쿨하게 받아칠 만한 사람은 못 됐던 거야. 그저 선생님의 기대에 맞는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친구들에게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 되었지.


나는 엄마가 학교 오는 게 싫었어. 치맛바람 날리는 엄마들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으면 했지. 중학생 시절 반장이 되었을 때는 반장 엄마가 운동회 날 햄버거를 돌려야 하는 관행을 보고 다시는 반장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어.


그런 엄마가 딸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첫 학부모 모임에 나오셨을 때야. 지금 생각해도 참 징글징글한 사람들이었어. 치맛바람 세기로 유명한 엄마들이 이상하게도 우리 반에 다 모여있었지. 그럴 수 있잖아. 그냥 운이 나빴던 거지. 지금도 가끔 친구들과 만나면 "그 아줌마들 진짜 유별났어"하고 얘기하게 되는 그런 엄마들이 우리 엄마한테 접근했어. "1등 엄마, 1등 엄마"하면서 말이야.

그런 경험이 없었던 엄마는 그냥 기분이 좋으셨던 거겠지. "1등 엄마, 비결 좀 알려줘요~" 란 말에 엄마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다니는 독서실과 내가 수학 과외를 받던 선생님을 말해줬어.


그다음은 뻔하지. 반 아이들이 대거 내가 다니는 독서실에 등록하고 팀을 짜서 같은 선생님께 수학 과외를 받게 된 거야. 그런 일이 반복됐어.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뭐 공부해?" 하면서 보고 있던 문제집을 들춰보고는 다음 날 같은 문제집을 사서 오는 그런 일들.


선생님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셨어. 반에서 전교 1등이 나올 때마다 1등 한 아이가 반에 피자를 돌렸는데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면 매번 우리 반은 피자를 먹었지. 나는 피자에 대해선 엄마에게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런 모습이 꼴 보기 싫었거든. 그래도 1등을 하려 기를 쓰고 공부했지. 아마 그 선생님 덕일 거야. 매번 우리 반에서 전교 1등이 나왔던 이유, 우리 반 평균점수가 다른 반보다 월등히 높을 수 있었던 원인. 그 선생님 때문었지. 나쁜 선생님이었다고 얘기하진 않을래. 그저 나와 맞지 않았던 분이었던 거야.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했어. 다른 지역으로 전학가게 해달라고도 부탁했어. 엄마에게 씨알도 안 먹혔지만. 학교 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 야자 시간에 매번 도망 나왔어. 공부를 잘하니 혼나지도 않더라. 집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부터 한 층 한 층 걸어 내려오며 '여기서 죽을까, 여기서 죽어버릴까' 생각했지.


그래도 시간은 가더라. 1년이 지나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바뀌었어. 그래도 여전히 난 죽고 싶었어. 그 1년의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의 인성이, 사고가 모두 바뀌어버린 것 같았어.

괜찮은 대학에 갔지만 그만뒀어. 그냥 그게 내 운명 같았어. 그때 바뀌어버린 내 운명으론 대학을 온전히 끝마치고 다시 취업 경쟁에 휘말릴만한 힘이 없었던 거야.


상담을 받으면서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게 돼. 그리고 난 고등학생 때에 자주 멈춰있지.



그런데 말이야. 결혼을 두달 앞둔 고등학교 친구를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이 친구들 말이지. 그렇게 고통스럽던 시간 속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나를 좋아해 주던 친구들이었어. 나를 괴롭게 했던 아이들은 어느 하나 남아있지 않았어. 예민하고 까칠했던 그 시절의 나와 함께 밥을 먹어 주고 화장실을 같이 가고 체육복을 빌려주던 그 아이들만이 지금 내 곁에 있는 거야.


기억도, 추억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옥 같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결정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렇지만은 않아. 엄마 아빠와 도시락을 싸서 호숫가 잔디밭에서 돗자리 펴고 놀던 기억, 여름휴가만 되면 온 가족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던 추억.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거야.


어떤 시간을 남길지, 지금의 나를 어떤 모습으로 선택할지는 나에게 달렸어. 내 아픈 상처는 아픈 사람을 이해하는 데만 쓸래. 지금의 나는 현재 내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처럼 좋았던 것들만 간직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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