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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Mar 01. 2020

당신과 함께하는 순간

오만의 마음 치유 일기 5 - 그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마 이랬던 것 같다. "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지?"란 질문에 삼순이는 이렇게 말했다.


한 여류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 소설가는 밤새 글을 써서 새벽에 남편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잡니다.
그러면 남편이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그 글을 봅니다.
매일 아침 남편은 아내가 써놓은 글을 읽는 첫 독자가 되는 거죠.
전 제가 만든 케이크를 제일 먼저 진헌 씨를 먹일 겁니다.
제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제일 먼저 먹여주고 싶습니다.
그만큼 진헌 씨를 사랑합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중)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파티셰 김삼순은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진헌에게 먹여주고 싶다고 했다.

소설가는 남편에게 갓 지은 글을 매일 아침 선물함으로써 사랑을 전했다.

나 역시 '내 내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와 나누기를 원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나누기에 알맞은 사람을 적어볼래요?"란 형님의 질문에 선뜻 그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 남편의 이름도, 엄마의 이름도.


친구 이름 한 두 명을 썼다 지웠다.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요."

상담사인 형님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여전히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이랄까. 우습게 들리겠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내게는 어느 자리에서나 눈에 빨리 띈다는 것일 것이다. 나서기를 좋아한다거나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모임에서나 가장 먼저 이름을 외우게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나인 것은 확실하다. 쉽게 호감을 얻었고 남들이 쉬이 다가왔다. 어쩌면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능력이다. 어떻게든 사랑받고 싶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이 세상에는 다시없을 재능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내게는 그 사람과의 충돌과 같아서 내 에너지가 부서지는 느낌이다. 고갈되는 느낌이다. 어렵지 않게 얻은 호감을 잃지 않기 위해 나의 행동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진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안다"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손쉽게 획득한 호감과 관심에 얽매여 있는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그들은 재빨리 호감을 거두어 간다. 그때 내게 남게 되는 감정은 공허이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런 감정에 익숙해서인지 "그럼 반대로 나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나누기에 안 맞는 사람이 있나요?"란 질문에는 바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대한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랬다. "지가 날 뭘 안다고."


"가영 씨는 착한 사람이니까...", "가영 씨는 원래..."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에 대한 본인의 평가 속에 나를 가두는 사람들이었다.


"왜 가영 씨는 그 사람들이 당신을 재단하게 가만 두나요?"

형님의 물음에 잠시 멍해졌다.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을 피함으로써 나와 단절시켜버렸기에 그런 질문은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아직도 외부의 인정이 그렇게 중요하나요?

  가영 씨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죠?"


그녀를 찾아간 것은 '나를 부정하는 말들' 속에서 내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난 부족해"라는 말이 가득했고 그로 인해 언제나 나는 전전긍긍했다. 외모, 성과, 외부의 인정에 목매었다. 배움에 집착해 몸을 혹사하고 결국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녀를 만나 나는 내가 들었어야 했던 말을 알게 되었다. "넌 이미 충분해"라는 말. "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야"라는 말.

그것을 알게 됐지만 난 여전히 보이는 것에 매여 나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가영 씨는 왜 가영 씨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를 '나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나누기에 알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요?"

"엄마한테는 좀 숨기고 싶어요. 나로 인해 너무 쉽게 상처 받는 사람이니까. 솔직해지기가 쉽지 않아요. 어쩌면 가장 감추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쓰는 글을 엄마는 안 봤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좀...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사랑하지만 뭔가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못 돼요. 그렇다고 남편을 바꾸고 싶지도 않고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가영 씨는 그런 사람들이 싫다면서 왜 남편을 가영 씨의 틀에 가두나요? 남편을 지금 '그냥 그런 사람이니까 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재단하고 있는 거잖아요. 남편과 제대로 얘기는 해봤어요?"


남편은 나를 만나고 세상에 색이 칠해졌다고 했다. 일상적으로 지나쳐온 하얀 구름과 푸른 숲을 보며 경탄하는 나를 통해 자신의 삶에도 색깔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노을이 정말 아름답구나. 하늘이 저렇게 핑크빛을 띨 때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고 다. 그런 남편을 왜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믿지 않았을까. 나는 남편의 단조로웠던 세상에 다채로운 빛깔을 선물해준 사람인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인데, 왜 나의 가능성을 무시해 온 걸까. 나는 왜 그토록 철저하게 나 자신을, 내 가능성을 업신여겨 왔을까.


파티셰는 케이크를 굽고 소설가는 글을 써서 사랑을 표현한다.

나는 주위에 있는 모든 감춰진 아름다움을 끌어올려 그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듦으로써 내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아무렇게나 핀 들꽃 한 송이에 바쁜 걸음을 멈춰 설 수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사랑을 건넨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먼저 닿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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