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e is better than Perfect
오만의 마음 치유 일기 - 번외편 3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생각한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일. 그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일.
가끔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꿈이었다고 한다면 그것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서울 한 복판에서 20만 원 대 고시원을 전전하고 있었다. 통장에는 겨우 몇 천 원이 전부여서 지폐 한 장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내 인생이 결국 망했구나. 왠지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마음 한편에서 알려주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는 몰랐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명문대를 때려치우고 꿈을 좇겠다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어머니의 한숨과 사람들의 비웃음을 각오하며 고향으로 쫓기듯 내려왔다. 그때 내가 후회한 것은 꿈을 좇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가슴 아파한 것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던 스무 살의 바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의 완벽한 게으름이었다.
이십 대의 그 많던 시간을 대체 난 뭘 하고 지냈을까. 실패가 너무 두려웠다. 내가 택한 길에 재능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언제나 ‘작품 구상 중’이었다.
데뷔작으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어느 젊은 천재 감독이 되기 위해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완벽에 대한 집착 덕에 난 작품적으로는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 대신, 인생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바닥을 쳤다 생각하니 못할 게 없었다. 고향 마을 문화 센터에서 무료로 동화 강좌를 연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신청하게 되었다. 동화를 써야겠다는 간절함도 없었다.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 뭐라도 시간 때울 곳이 필요했다. 어차피 나는 동화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꼭 잘 써야 하는 건 아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이 채 가지 않아 나는 동화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길인가? 역시 이 길이 내 길이었던 것인가. 사실 나는 영화가 아니라 동화 쪽에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고생하던 전 영화감독 지망생이자 현 동화작가는 세상을 감동시킨 역작을 만들어냈다!’로 인생이 끝나면 좋겠지만 역시 인생은 그렇지가 않았다. 작가 본인과 작가 지인들만 읽는 숱한 책 중 한 권이 세상에 또 출판된 것이다. 그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출간 작가라는 내 마음속 명함에 취해 또다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작가인데’라는 마음에 형편없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어떤 글도 쓰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나는 또다시 완벽함의 그늘 속에 빠져버렸다.
누군가 내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분명 내 삶에도 소중한 것들이 있다. 후회되는 순간을, 또는 그때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바꿔서 내 삶을 좀 더 낫게 변화시키길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내게 있는 것들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임에는 틀림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시작이라는 건 여느 사람들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내 인생에서의 시작이란 그런 것이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내 인생을 되돌려 완벽하게 만들고픈 마음은 없다. 그저 내 삶을 완수하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하얀 종이를 완벽하진 않지만 의미 있는 무언가로 채우는 것. 그것이 내 앞에 주어진 도전 과제이고 나는 끝내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