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만 Jul 02. 2020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오만의 마음치유 일기 7 - 소명 찾기와 나 브랜딩 하기


"왔어요, 왔어! 느낌이 딱 와버렸어요!"



코로나로 인해 수개월간 만남을 갖지 못했던 형님과의 상담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떤 주제로 이 공백을 메우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던 형님은 내게 '영성'이란 단어를 꺼내놓으셨다.


"이제 가영 씨를 브랜딩 하는 일을 해보려 해요. 브랜딩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명'을 찾는 일이에요. 소명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가'에요. 소명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나의 일과 삶은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일치할 거예요. 나와 가족, 세계와 물질(부)이 모두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나는 그저 살아갈 뿐인데 '부'가 나를 따를 것이고, 가정이 화목해질 것이고, 세계가 변할 거예요. 그리고 이 소명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영성'을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말을 마친 형님은 내게 한 권의 책을 권했다. 래리 크랩의 '파파 기도'였다. 물론 기도에 대한 책이었고, 내가 직접 고를 만한 책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종교를 떠나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 기도를 해보라는 형님의 말을 흘려듣진 않았다. 그만큼 내 마음속엔 변화를 갈망하는, 소명을 찾고 싶은, 어쩌면 '부'가 따르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책을 읽었다. 흥미는 없었다. 스스로를 종교인으로 정의하지 않는 나로서는 가슴을 치며 탄식할 만한 문장이나 울림 같은 것은 찾지 못했다. 다만 나도 기도를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 생겨나긴 했다.

책에서 말하는 것은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만 하는 '간구형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관계형 기도'로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교회 장로이자 한 주라도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세상에 재앙이라도 올 것처럼 행동하던 어느 지인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집안 곳곳에는 십자가와 성화들이 가득했고 액자에 담긴 성경 구절은 눈길 닿는 데마다 놓여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 것은 냉장고와 화장실 문에 코팅까지 해서 붙여둔 그가 직접 쓴 기도문이었다. "첫째. 하나님, 올해에는 꼭 30평대 아파트를 제게 허락하소서."로 시작된 기도문에는 수십 가지의 선물(?)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둘째, 벽결이 TV를 허락하소서..."

어린 나이였음에도 나는 그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이 내보인 천박함이 싫었다. 그렇게 나는 종교인이나 기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관계형 기도라면 한 번 해볼 만했다. '전지전능한 신이시여, 내 소원을 들어주소서', 이런 것보다는 할만했다.  그렇다고 없던 신앙이나 신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건 아니기에 나는 이 우주와 자연의 에너지, 기운을 향해 이야기했다.

'나는 내 예민함과 감수성, 공감 능력이 당신이 내게 준 나의 소명과 관련 있음을 압니다.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과 타인의 고통에 함께 하는 나의 능력은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려 함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이야기가 더 잘 들리면 좋겠습니다. 나로 하여금 이루게 하려는 당신의 그 뜻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기 시작하고 며칠이 흘렀다. 지역 센터에서 역할놀이 상담에 대한 수업을 받고 있을 때였다.

'나의 능력을 나누어야 해. 내가 배운 것을 남에게도 알려줘야 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정말 '밀려왔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다른 생각들을 멀리 쓸어 버리고 오직 '나눔'에 대한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어쩌면 가슴속을 휘저어 놓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왔어요, 왔어! 느낌이 딱 와버렸어요!

저는 나눠야만 해요. 제가 가진 것들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만 해요!"


들뜬 마음에 목소리가 커진 나는 당장 다음날 있을 상담 시간에 '사업 계획서(?)'를 써서 가겠다고 했다.


"그래요.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사람 모으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죠. 한 번 생각해보고 내일 같이 얘기해요."


부푼 마음을 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써내려 갔다. 연극을 했으니까 연극과 역할 놀이 상담을 결합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고, 좋은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 계획을 적어나가며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큰 일이다. 내가 괜한 일을 벌였구나!



상담 시간이 되었다. 나는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제가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소모임 같은 걸 생각했는데, 남편이 그래도 사람들이 왔으면 뭔가 배워가야 하는 게 있어야 될 것 아니냐고 해서,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걸 계산해보니까, 연극은 6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고..."

말은 점점 길어지고 '사업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의 시간이 되어 갔다.


"가영 씨는 이걸 왜 하고 싶은 거예요?"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과거의 내가 답답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분명 답답할 것 같으니까. 자신을 표현하고는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술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럼 여기 표에 한 번 써볼래요?

개인적인(personal) 차원, 관계적인(relation) 차원, 그룹(group) 차원에서의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을요."




표가 그려진 종이를 받아 들고서야 깨달았다. 여태껏 나는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해 왔지, 큰 그림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결국 내가 적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목표와 목적뿐이었다. 목적(purpose)은 배운 것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싶다. 목표(goal)는 전문성 강화였다. 수업을 준비하며 나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해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었다.


"가영 씨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된 거죠?"

형님은 또다시 '왜'를 물었다.


"제가 공부하면서 내면의 풍요로움 같은 것을 느꼈거든요. 그리고 그걸 꼭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글쓰기, 연극, 그런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가영 씨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에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가에요. 가영 씨가 느낀 내면의 충만함, 그게 생기니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  거죠? 이게 바로 가영 씨가 이 일을 통해 달성할 목표(goal)에요.

가영 씨를 만난 사람들이 내면의 풍요로움을 깨닫고 그것을 자신도 다시 나누고 싶게 하는 것, 그것이 가영 씨가 만들려고 하는 모임의 목표가 돼야죠. 그리고 그러한 풍요로움이 곧 성장일 것이고, '성장'이 바로 가영 씨가 말하는 '전문성 강화'랑 연결될 거예요. 연극이나 글쓰기, 그런 것은 단순히 매개체일 뿐이고요."


지난 상담 때 형님이 브랜딩을 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를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 네 가지란 이성과 감성, 행동력과 영성이었다. 형님은 내가 이 모임(또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했다. 나의 소명을 찾기 위해 기도를 하는 가운데(귀를 기울이던 중에) '내가 배운 것을 나눠라'라는 소명, 즉 영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나와 내가 만들려고 하는 모임을 연결시켜 줄 것이다. 이 '영성'이 바로 브랜딩의 첫 번째 조건이다. 형님은 또 내게 사람들과 함께 이 모임의 goal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책을 선정해 나누라고도 했다. 만약 그런 책이 세상에 없다면 '내'가 그런 책을 만들라고도 했다. 이것이 브랜딩의 두 번째 요소, '이성'을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 글쓰기 등 매개체로서의 예술은 이 모임의 브랜딩 세 번째 요인 '감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매개체를 이용해 '자신을 표현하기'가 바로 브랜딩의 마지막 조각 '행동력'이 된다.  

이렇게 한 조직이 브랜딩 되었다.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반드시 세 가지 측면을 생각해요. 이것이 과연 '위한 공부'냐를 먼저 보죠. 진정한 공부, 진정으로 배우기 위한 일은 나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이것을 통해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가영 씨가 상담을 통해, 또 공부를 통해 내면이 채워지자 자연스럽게 그것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해요. 저는 제가 공부하고 깨달은 것을 가영 씨에게 모두 주고 싶어요. 그게 제대로 된 공부라고 봐요. 두 번째로 제가 고려하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거예요. 이것은 '소명'과 연관되어 있죠. 지난 상담들을 통해 가영 씨는 가영 씨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어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이것은 가영 씨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못 보는, 가영 씨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가영 씨는 이것을 가지고 가영 씨의 일을 해나가야 해요. 그럼 모임의 색깔도 생기죠. 가영 씨는 가영 씨만이 볼 수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세 번째는 '연결'이에요. 가영 씨의 깨달음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거기에는 책임감이 필요 없어요. 그냥 '대접'하는 거예요. 가영 씨를 통해 대접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질 거고. 그렇게 선한 영향력이 퍼지는 거예요. 가영 씨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는 거예요. "



이번 상담을 통해 나는 나의 소명을 찾는 일로부터 나를 브랜딩 하는 법까지 배우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가 조직하고자 하는 모임에 대해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매겨놓은 거짓된 가치에 휘둘려 상처 받았던 경험 있으신가요? 진실된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 이미 내 안에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습니다. 예술을 통해 진짜 아름다움을, 진실된 나를 함께 표현해 봅시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이제, 당신이 용기를 내어 그것을 꺼내 표현하기만 한다면 세상도 당신과 함께 변할 겁니다."


어떤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이전 09화 내 삶이 곧 예술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