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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Jul 09. 2020

건강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즐거움

오만의 마음치유 일기 8 -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용기




상세하게 말하는 것은 피하겠다. 지역 독서 모임 온라인 카페에서 겪은 일이다. 한 남성 회원이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씁쓸함을 느꼈다며 글을 올렸다. 하지만 그 남성 회원의 '씁쓸한 마음'에는 그보다 더한 여성 비하를 포함하고 있었다(물론 그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 글은 즉시 화제가 되어 온라인 상에서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분노한 여성 회원들에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해달라'라는 등의 말이 쏟아졌다. 밤늦게 이 글을 읽고 이후에 달린 댓글들의 논쟁을 본 후 나 역시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앞선 댓글을 썼다 지우며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선잠을 잔 후에 나는 컴퓨터를 켰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작가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망하긴 했지만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었고요.

저희 어머니께선 제가 성인이 된 후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 아이가 착하고 여린 사람이기보다는

같은 상황에서도 덜 상처 받는 무딘 사람이 되기를.

남들보다 앞 선 사람이기보다는

남들이 걸었던 길을 비슷하게 걷는 사람이 되기를.

바짝 선 양심에 괴로워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닳고 닳아 익숙해진 아픔만을 안고 가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습니다. 저의 예민한 감수성은 이십 대의 저를 무던히도 괴롭혔고 엄마를 걱정케 했습니다. 지방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살아가던 제가 대학 입학과 함께 처음으로 서울에 가게 되었을 때, 구 서울역 앞 광장에서 한 여름에도 두꺼운 파카를 입고 축 늘어져 있던 노숙자분들을 보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용돈으로 비싼 점심을 먹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죄스러웠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일식집 철판 요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던 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던 친구의 표정을요.


저는 어쩌면 그 친구의 표현대로 ‘굳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애’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제게 어느 철학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펜을 잡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 '~ 독서모임'의 멤버분들도 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업에, 가사 노동에, 스펙 관리에 당장 내 앞에 놓인 수많은 현실 문제들로 바쁜 와중에서도, 자신의 시간과 금쪽같은 휴일과 경제적 비용까지 써가며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러 모이는 이 사람들을 제가 어찌 달리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이 정말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나 할까요? 독서를 통해 넓어진 시야와 날 선 감수성이 과연 우리의 삶을 평안하게만 하는 것일까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집어 든 사람들입니다. 그건 우리의 ‘감수성의 질’이 우리를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제가 처음으로 쓴 수필을 글쓰기 모임에서 발표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글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아이를 만났다. 성적으로 나와 전교 1, 2등을 다투던 친구였지만 그 아이는 예뻤고, 나는 그렇지 못했기에 나는 계속해서 그녀와 비교를 당했다. 그러나 십 년 만에 만난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던 그 아이가 현재의 나보다 더 살이 찐 것을 발견한 순간,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동창들에게 신나게 전했다. 그날 밤, 엄청난 수치심이 몰려왔다.

대학 시절 여자 동기생들의 외모를 순위 매기고 성적인 농담을 하던, 한 때는 친구라 믿었던 남자 동기들로 인해 내 대학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원망하던 그 남자 동기들의 행동을 내가 그날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의 잘못도, 그렇다고 나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누군가는 끊임없이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고, 또 누군가는 그 끝없는 질투와 미움을 받아야 했던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오늘은 그녀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제가 이 글을 낭독했을 때, 옆에 있던 한 회원분은 제게 말했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요. 장 선생님 정도면 뭐 A급이지.”     


그때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감수성의 깊이, 공감의 범위는 이토록 다를 수 있는 거구나, 하고요.

저의 이 문제의식은 ‘젠더 감수성’과 관련된 상황에서도 늘 따라다닙니다.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저는 남성 우월주의자를 싫어하는 만큼이나 여성 우월주의자도 싫어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바로 ‘평화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성별이 다른 사람들, 성적 취향이 독특한 사람들, 그리고 갑과 을의 관계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그리고 또 행복하게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게 제 남편마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묻습니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오히려 그게 서로를 경계 짓는 행동 아니야?”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보, 일상적인 수준에서의 성희롱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지 않을게. 그냥 아주 선명하게 문제를 볼 수 있는 한 가지의 예를 통해서만 얘기할게. 강간에 관한 거야. 사실, 강간을 당한 여자는 전체 여자의 수에 비하면 정말 소수야. 강간을 저지르는 남자는 그보다도 더 소수일 거고. 대다수의 정상적인 남자들은 오히려 그런 범죄를 혐오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비난하고 그들과 선을 긋겠지. 그래서 어쩌면 그 남자들은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왜 우리를 예비 범죄자 취급하냐고.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가 생겨. 거의 모든 정상 수준의 남자들은 그 극소수의 범죄자들과 자신을 쉽게 구별할 수 있잖아. 자신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자신이 그런 범죄를 당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매 순간 두려워하며 살아가진 않잖아. 그런데 여자들은 달라. 실제로 그런 피해를 당하는 여성의 수는 비율적으로 따지면 소수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거의 모든 여성들이, 아니, 내 생각에는 모든 여성들이 언젠가 자신도 그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일상을 살아. 그런 상황에서 그 둘-여성과 남성-이 살아가며 느끼는 세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저는 이 말을 하면서 어느 남성 솔로 가수의 ‘웃자고 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재밌게’ 들려주던 그 이야기는 그와 그의 친구가 어느 밤길에 ‘장난으로’ 지나가던 여성의 뒤를 바짝 쫓았고, 그 결과 그 여성이 소스라치게 놀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슬픔을 읊조리던 그 발라드 가수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저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황현산 작가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잠 못 드는 이 새벽, 제 자신과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현재는 얼마나 두터운 가요?”


  




이 글을 써서 온라인 카페에 올리며 나는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글로써 나 자신을, 나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해내는 법을 깨닫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흔들렸다.


사건의 발단이 된 분과는 호형호제하는 듯 보이던 또 다른 회원분이 댓글로써, 그리고 또 다른 글을 올림으로써 내게 항의한 것이. 감정의 찌꺼기가 그대로 담긴 글이라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인 듯했다.

'공감은 이해를 하기 위한 과정일 뿐 그것만으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너희는 왜 공감에 대해서는 그렇게 주장하면서 이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가.'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글의 내용에 수긍이 간 것은 아니었다. -공감이 이해를 위한 과정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배제된 이해를 요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 사건을 겪으며 상담 시간에 형님이 보여주었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 지도'가 생각났다.



용기(의식의 수치 200)를 기준으로 아래쪽으로 갈수록 부정적인 힘(force), 위쪽으로 갈수록 긍정적인 에너지(power)의 의식수준을 나타낸다.



형님은 내게 목표를 세우자고 했다. 이번 회기 동안의 만남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의식 수준을 정해보자고 했다.  지금의 내 의식 수준을 나는 '자발성' 단계로 보았다. 자발적으로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단계로는 '이성-이해'의 단계를 뽑았다. 통찰력을 가진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형님이 말했다.


"가영 씨가 원하는 '이성-이해'의 단계 밑에는 뭐가 있죠? 바로 공감(포용)이 있어요. 공감하지 않으면서 '이해'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말을 들으며 남편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남편과 나는 사회적 이슈와 이슈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존중은 하지만 이해까지는 안 돼."라고 말해왔고, 남편은 "이해는 하지만, 존중은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지만, 내가 굳이 그것을 존중할 필요까진 없잖아."라고 했다.

하지만 호킨스 박사의 말에 따르면 존중(포용, 공감)이 없는 이해는 진짜가 아니다.



결국 '공감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던 그 회원의 말은 틀렸다. 성차별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에게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반대로 그 사람 역시 본인은 우리를 이해하는 척했지만, 전혀 우리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의 '이해'란 조금도 설득력이 없었다.


나는 그의 댓글이나 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내 글로써 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내보였기에 더 이상 어떠한 추가 설명이나 변명이 필요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의 지적에 대해 생각은 해보았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 수업 작가님께서 강조한 내용이 있었다. "절대 특정인을 비난하는 글은 쓰지 않길 바라요. 그리고 감정이 격양됐을 때는 오히려 펜을 내려놓으세요."

그때 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나의 글쓰기는 과연 그 조언에 맞는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았다. 나는 분명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조롱'하고자 그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나 자신과 상처 받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었다. 그 글을 쓰고 나서 느낀 뿌듯함은 내가 누군가와의 싸움에서 '펜'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한 방 먹였다는 데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해낸 것에 대한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 글을 쓰고 올리는 과정에 있어 반성해야 할 것이 있다면 '감정이 격양되었을 때는 오히려 펜을 놓으라'는 부분일 것이다. 일단 잠을 자고 감정을 추스르고 썼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평온한 상태에서 쓴 글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조금은 타인의 평가나 비난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의식 지도'를 살펴본다. 부정적 의식에서 긍정적 의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티핑 포인트는 바로 '용기'이다. 그동안의 나는 내가 느껴왔던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 특히 '수치심'에 있어서 항상 회피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대해 왔다. 하지만 수치심을 이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 용기를 내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것으로 인해 수치스럽지 않다. 긍정적인 기운이 힘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글을 올리고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댓글을 달아주고 내 글을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한 명의 비난하는 사람으로 인해 그 많던 동조자들에게서 얻은 기쁨은 사라지고 움츠러드는 순간이 찾아왔다. 부정적인 기운이 나를 감쌌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모두가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카페를 탈퇴해야 하나. 그때 누군가가 보란 듯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주 올려주세요'하고 내게 얘기해주었다. 힘이 났다.


그는 댓글에 이렇게 적어주었다.


"올리버의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하는 모든 종류의 창작은 세상이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나의 글이,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되게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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