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팬티 벗고, 소리 질러
수학공식 같은 하루를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겁고,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는
안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팬티'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팬티 모양으로 팬티 주인의 나이를
짐작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내 팬티로는
내 나이를 절대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는 내 팬티는 안락함 그 자체
남이 보는 내 팬티는... 글쎄
가난의 상징?
궁상의 표본?
나에게 절대 반지 정도의 영향력을 선사하는
절대 팬티의 기준은 다름 아닌 '늘어짐'이다
고로 짱짱한 새 팬티일수록
선택받을 기회를 박탈당한다
평범한 팬티가 특별해지기 위한 조건은 딱 두 가지
첫째, 오래 입을 것
둘째, 특대 사이즈일 것
남자가 애인의 팬티 색이나 모양 따위에
0.0001도 관심 없는 건 학계의 정설이고,
아직 미혼인 아가씨가 팬티에 무관심한 건
남부끄러운 일인가?
가끔 엄마가 내 애착 팬티와
방 닦을 때 쓰는 걸레를 헷갈리고
110 사이즈로 시작한 팬티가
강아지 이불 정도 크기로 늘어난 거뿐인데
이게 정녕 창피할 일이라고?
시대를 거듭할수록
여자 팬티에 사용되는 천이 줄어든다는데
내 팬티만 시대를 역행하는 중이다
약으로도 못 고치는 팬티 취향은
어느 날 불현듯 생긴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만 같다
손바닥 보다 작아서 바람이 슝슝
주렁주렁 달린 레이스도 세상 불편하고
여리여리 파스텔 컬러도 뭔가... 오글오글
팬티는 자고로 천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엉덩이가 다 가려져야 하고
(그래야 걸을 때 똥꼬에 끼지 않는다)
어디든 철퍼덕 앉아도 베기는 거 없이
부들부들 잘 늘어나는 면 재질에
여러 번 세탁해도 무늬가 사라질 걱정 없는
무지 팬티가 짱이죠
타인의 눈을 피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
나에겐 팬티가 그렇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
팬티 정도는 괜찮잖아요?
아가씨가 할머니 팬티 입는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팬티 자유주의 포에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