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소리 나는 산에서 오아시스 찾기

오늘도 운이 좋아서 살아있습니다

by 후니언니


바다가 그냥 커피라면
산은 음...
모카시럽 5
헤이즐넛 시럽 5
프라푸치노 로스트 4
자바칩 반은 갈고, 반은 통으로
초코드리즐 살짝
휘핑크림 많이 얹은
자바칩 프라푸치노 정도?

무릎도가니만 허락해 준다면
바다보다 맛있는 산으로 할게요


계절마다, 오르는 사람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누군가에게는 정복의 대상이 되었고

또 누군가에겐 도시 생활의 텁텁함을

잊게 해 주는 도피처가 되었다가,

가끔은 레깅스 입은 여자들을 맘껏 구경할 수 있는

자선 패션쇼 현장이 되기도 했다


내가 산 찾는 이유는 대부분 갈증 때문이었다

바쁜 시기에는 뜨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가

르륵 몸 힘을 빼면 내일이 왔다
모든 일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수분 섭취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독한 갈증이 껴졌다


정상에서 만난 올해 마지막 벚꽃


장장 4시간에 걸 관악산 등산을 끝내고

땀과 눈물에 푹 절여진 얼굴,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를 침대에 던졌


이름에 '악'자 들어간 산은 쳐다보지도 말라했거늘...

악산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느라

360여 개의 관절에서 삐그덕 고철 소리가 고,

급한 대로 매 기름칠이라도 해야 했다


나에게 핸드폰 화면 속에서 돌아가는 세상은

통증을 잊게 해 줄 값비싼 기름이자, 치료제였다

이미 내성이 생겨 악! 소리 나는 사건에도

쉽사리 분출되지 않는 도파민을

용암처럼 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60대 A 씨는 아내와 함께 연주대 부근 바위에 앉아

발아래로 펼쳐진 절경을 눈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앞으로 쓰러져 추락했고,

헬기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했다


내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사망 사고 목격자가 됐더라면?

바퀴벌레처럼 끈질길 트라우마 사로잡혀

평생 산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


별생각 없이 찍은 등산로 푯말이

별안간 지옥 불구덩이로 안내하는 이정표처럼 보였고,

해발 630미터 높이의 신비로운 바위산이

잔혹한 살인 현장처럼 느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매하게 남아있던 갈증 싹 가셨다


등산장비 필수


정말 미안하게도 천운이었다

최근 하체 운동을 시작한 것도

갈까 말까 고민하느라 발이 늦어진 것도

생수를 한 병만 챙겨간 것도

하산할 때 등산 동호회 아저씨들을 만난 것도

온 우주가 오직 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산은 나에게 인생의 갈증을 소할 귀한 기회를

한 번 선사했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마다가 안타깝게 떠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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